임인년(壬寅年)은 검은 호랑이의 해다. 검은 호랑이의 해는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를 종합한 60갑자에 근거를 둔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임(任)은 오행(五行) 중 물, 오방(五方) 중 북, 색상으로는 흑색을 각각 상징한다. 호랑이와 관련된 속담을 보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지금 전 세계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탄소 배출에 따라 급격한 기후변화와 기후재난은 늘어나는데 지금까지 제대로 된 대응은 부족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가 '탄소중립'이라는 공동 숙제를 '인류생존' 문제로 자각해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주요국은 '글래스고 기후조약'을 합의했다. 이 합의에 석탄화력 단계적 감축과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았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발전원을 무탄소 발전원으로 전환하겠다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수립하고 이를 위한 변화의 노력을 시작했다. 탄소중립 사회로 변화는 더 이상 우리 인류에게 주어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전력산업은 기후 대응이라는 시대 요구의 최전선에 서 있다. 정부가 선언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산업 연구개발(R&D) 메카인 한전 전력연구원은 탄소중립 전력망 구축을 위한 핵심기술 개발 로드맵을 수립했다. 이 로드맵으로 투자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핵심기술 개발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자 한다. 다양한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개발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원 건설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한다. 한 예로 전력연구원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해상풍력 일괄설치기술'(MMB)은 중요한 신재생에너지원 하나인 해상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는 기술이다. 기존 기당 90일이 소요되던 해상풍력 기초 구조물 설치기간을 10일로 줄이고, 설치비용도 기당 37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
'2050 탄소중립'을 위해 앞으로 28년이라는 많은 시간이 남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개발된 기술의 전국 확대 설치를 위한 15∼20년이라는 시간을 고려하면 기술개발에 주어진 시간은 단 10년이다. 따라서 전력연구원만의 노력으로는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 이에 따라 산·학·연 유관기관과 연대와 협력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신속한 기술 개발과 실증을 수행해 변화 가속도를 높이고자 한다. 정부 로드맵에 나와 있는 '수소·암모니아 발전 기술 개발'을 산·학·연 합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무탄소 발전으로도 불리는 수소·암모니아 발전은 수소 또는 암모니아를 기존 석탄 발전기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기에 섞어 연소시켜 전력을 생산한다. 예를 들어 석탄발전 보일러에 암모니아를 섞어 연소하면서 그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 액화 암모니아는 단위 부피당 수소 함량이 액체 수소의 약 1.5배에 달한다. 선박을 통한 대량 수송이 용이한 수소전달매체 중 하나다. 암모니아는 -33도로 냉각하면 액화되므로 각각 -253도, -162도에서 액화하는 수소나 메탄보다 액화와 수송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따라서 암모니아는 정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수소 공급의 80%를 차지하는 해외 수입을 위한 최선 저장·수송 수단이 될 수 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의 약 37%를 에너지 전환부문(발전)이 차지하고 있으며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상 수송·산업·건물 부문 전기화까지 고려하면 전환 부문 역할은 절반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연구원은 시대 사명을 완수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이 있다. 한국전력공사 본연의 업무인 전력계통 안정성 확보뿐만 아니라 신재생, 에너지저장장치, 무탄소 전원 연구개발에 매진하겠다.
이중호 한국전력공사 전력연구원장 jungho-lee@kepc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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