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이슈는 단연 ESG위원회 설립이었다. 지난 1년간 코스피 200 기업 가운데 ESG위원회를 이사회 산하 위원회로 공식화한 기업은 무려 96개사(48%)에 이른다. 이제 ESG위원회 구성은 ESG를 추진하는 기업들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는 활동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ESG위원회 설립이 보여주기식 활동이며, ESG위원회보다 내실 있는 ESG 추진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원론적 차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ESG위원회는 단지 기업의 ESG 활동을 상징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아직 한국 기업들이 ESG위원회의 역할을 제대로 부여하지 못한 것에 있다.
작년 1월부터 12월 말까지 코스피 200 기업이 개최한 이사회에서 다룬 총 안건 수는 5969건으로, 이 가운데 10.3%인 615건이 ESG와 관련된 안건으로 확인된다. 구체적으로 환경 5건(0.8%), 사회 267건(43.4%), 지배구조 321건(52.2%), 기타 22건(3.6%)이다. 그런데 다뤄진 안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부금 집행(64건, 10.5%), 안전보건(122건, 19.8%)과 같이 기존에 하던 업무들을 ESG위원회에서 처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보험 가입이나 수익성 개선과 같은 ESG와 관련 없는 안건들도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결국 지난 1년간 615건의 ESG위원회 보고·의결 안건 가운데 기존 업무를 합쳐 놓은 것이거나 ESG와 관련성이 낮은 안건들을 제외하고 ESG 리스크 관리나 ESG 사업모델 개발, 탄소중립 추진과 같은 유의미한 ESG위원회 활동은 149건(24.2%)에 불과한 것이 한국 기업들의 ESG위원회 활동 성적표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ESG위원회를 구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하지만 초기 ESG위원회 역할을 정의하지 못할 경우 ESG로 이름만 바꾼 활동들이 이사회 활동보고서를 채우지 않을까 우려된다.
ESG가 가지는 특성으로 ESG위원회 구성과 의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흔히 ESG를 장기수익추구(Long-term Performance Return) 성격이 강하다고 말한다. ESG가 당장 이익이 되지는 않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ESG위원회는 단기 성과에 의해 재임 기간이 결정되는 경영진이 가지고 있는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이 단기·장기 성과에 대한 시각의 균형을 위해 ESG위원회 활동과 더불어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ESG위원회를 통해 ESG 활동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가 있는 경우 ESG 활동은 더 이상 ESG 담당 부서의 활동이 아니라 모든 현업 부서의 활동이 된다. 어쩌면 지난 1년간 국내 기업들의 ESG위원회 성적이 초라한 이유도 ESG위원회는 만들었지만 ESG 담당부서의 힘만으로는 현업부서까지 ESG를 확산시키기 어렵기 때문일 수 있다.
ESG 경영체계의 근간은 지배구조에서 시작된다. 이제 ESG위원회가 챙겨야 할 때다. 자주 언급되는 글로벌 기업의 ESG위원회 활동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단어들은 ESG 중장기 전략, ESG 리스크 관리, ESG 관점의 기회 요인 발굴과 예산이다. 달리 표현하면 ESG를 경영전략의 중심에 두고 리스크 관리 관점과 사업 기회 요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며, 투자를 통해 ESG 추진을 강력하게 지원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기업들의 가장 눈에 띄는 거버넌스(G) 활동이 ESG위원회 설립이었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이제 많은 이해관계자가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은 ESG위원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있다. 지난해 ESG위원회 615개 안건 가운데 대부분은 보고 사항으로, 의결사항은 그 수를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손가락에 꼽힌다. 이제 보고 위주의 ESG 안건들도 의결사항을 포함해 ESG위원회 활동에 힘을 실어 줘야 한다. ESG 거버넌스 체계의 목적은 단지 ESG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이 아니라 ESG 관점의 경영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데 있다. 그리고 ESG위원회는 ESG 관점의 경영프로세스 구축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김동수 한국생산성본부 ESG경영연구소장 kds1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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