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가전 정보기술(IT) 박람회인 CES에서 전통의 자동차 제조사 제너럴모터스(GM)와 스텔란티스(Stellanticis)가 플랫폼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GM의 배라 회장은 CES 기조연설에서 “GM은 지난 10년간 선제적인 투자로 자동차 회사에서 플랫폼 혁신가로 전환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스텔란티스는 아마존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자동차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기업인 우리은행도 지난 15일 '디지털 플랫폼기업으로의 재창업'을 선언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일부 특정 산업 분야에서나 사용되던 플랫폼이란 다소 생소한 용어가 이제는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많은 기업들이 앞다퉈 사용하고 있다.
플랫폼은 원래 철도 승강장에서 유래되었지만 산업에서의 플랫폼 기업은 '다수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돼 상호 작용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과 산업 생태계'를 뜻한다. 플랫폼 기업이 된다는 건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용자들이 그 생태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역할을 번갈아 가며 시간과 돈을 소비한다. 사업을 확장하고 열정적인 소비자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많은 기업들이 플랫폼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바이스로 시작한 애플, 소프트웨어(SW) 제조사 마이크로소프트(MS), 온라인 쇼핑몰 운영사 아마존, 포털 구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타 등 글로벌 테크 빅5 기업은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바로 '플랫폼'이다. 스마트폰, 모바일OS, 앱스토어로 이뤄진 아이폰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애플, PC 운용체계(OS) 플랫폼인 윈도를 주력 사업으로 하다 최근 기업간거래(B2B) 클라우드 플랫폼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MS,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플랫폼기업인 아마존, 검색 기반 인터넷 광고 플랫폼과 유튜브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보유한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SNS 메타까지 이른바 테크 자이언트로 불리는 모든 기업은 플랫폼 사업을 기반으로 한다. 현재 이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플랫폼 비즈니스로 가장 커다란 영향을 받을 산업 분야로 모빌리티, 유통, 소비재, 금융, 헬스케어 등을 꼽고 있다. 기술 기업들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여 이들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전통 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테슬라 기업가치가 매출이나 차량 판매 대수에 비해 매우 높게 평가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7일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1254조원을 기록했다. 2021년 1000만대 이상을 판매한 토요타의 시가 총액이 406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93만대 판매에 불과한 테슬라의 기업가치는 거품이란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일찍부터 플랫폼 기업을 표방하며 뛰어난 SW를 바탕으로 시장 장악력을 키워 가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를 매개로 파생되는 다양한 고부가가치 비즈니스를 선점할 수 있는 미래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영국의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Ella Wheeler Wilcox)는 '운명의 바람'(The winds of fate)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똑같은 방향으로 바람이 불어도 어떤 배는 동쪽으로 가고 어떤 배는 서쪽으로 간다. 이는 바람이 아니라 돛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항상 변화의 소용돌이에선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과연 기업 리더는 플랫폼이란 바람을 확실히 이해하고 돛을 제대로 세우고 있을까. 미국 브라운대 심리학 교수 스티븐 슬로먼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는 '지식착각' 속에 살고 있으나 실제로 인간은 생각보다 더 무지하고, 더더욱 개인의 지식은 보잘것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떤 주제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는 행위만으로도 자신이 그것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한다. 또 그 주제와 관련된 지식이 세상에 존재하고,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으면 자신도 그것을 이해했으며 알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단지 느낌일 뿐이다.
플랫폼이 대세라 해서 확실한 개념 정립이나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남들이 하니까 마지못해 흉내만 내며 '플랫폼 워싱'(무늬만 플랫폼)을 하는 기업이 될 것인지 코로나 위기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 것인지는 얼마나 지식착각에서 벗어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모든 기업이 풀어야 할 숙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