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이 디지털 핵심성과지표(KPI)를 도입한 것은 디지털 전환(DT)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목표를 구체적 수치로 보여 줘서 부서와 직원에게 동기를 부여하려는 데 있다. 다만 디지털 KPI가 다른 시중은행으로 확산될 지는 미지수다.
아직까지 금융권에서 DT라고 하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개편하거나 서류 업무를 컴퓨터가 처리하게 하는 제한된 업무자동화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기업은행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구체적 목표나 지표 없이 DT를 추진하다 보니 방향성이 잘 보이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면서 “윤종원 행장이 디지털 비전 수립을 지시했고, 디지털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KPI를 도입하자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윤 행장 취임 후 가장 관심을 쏟은 분야 역시 디지털 역량 강화다. 매월 1~2회 행장 주관 '디지털혁신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디지털전략, 본인신용정보관리업(마이데이터) 등 디지털 신사업과 업무 자동화 등을 점검·추진해 왔다.
회의를 거듭하면서 DT 방향성이 잡히기 시작했고 디지털 인프라 구축, 기술 도입,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등을 넘어 '기업문화의 재창조'를 위해 디지털 비전과 목표, KPI를 수립했다.
윤 행장은 디지털그룹 조직 확대에도 힘을 실었다. 지난해 7월 조직개편을 통해 디지털그룹 아래 마이데이터사업셀(Cell)을 만들었다. 또 이달 정기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선 클라우드추진셀도 신설했다.
기업은행은 디지털 KPI 도입을 위해 싱가포르 DBS은행과 일본 미쓰이스미토모(SMBC)은행 등 해외 사례를 적극 벤치마킹했다. DBS은행이 2018년 개발한 디지털고객을 판별하는 기준 요건 등 디지털 가치 창출 방법론과 디지털 성과 체계를 참고했다.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성과 측정은 SMBC은행 사례를 보고 배웠다.
기업은행은 DBS은행처럼 디지털고객을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디지털 KPI 측정을 체계화했다. 기업은행 디지털고객은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 앱으로 돈을 이체하거나 금융상품 가입 등 은행 업무를 50% 이상 수행하는 고객을 뜻한다. 기업은행 계좌를 보유한 기존 고객이라 해도 은행 업무의 절반 이상을 비대면으로 보면 디지털고객으로 잡힌다. 직원별로 이렇게 정의된 디지털고객 신규 유치 실적 취합이 디지털 KPI 측정의 핵심이다.
RPA를 통해 업무 자동화를 몇 시간 달성했는지, 앱과 인터넷뱅킹 등 비대면으로 판매한 금융상품이 재무제표상 이익으로는 얼마나 반영되는지 등도 측정해서 점수를 매긴다.
이 지표는 고정되지 않고 변동할 수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디지털고객 실적, 업무 자동화 시간, 디지털 상품판매에 따른 이익 등 지표 아래 다양한 세부 지표가 또 있다”면서 “해외 사례에 비춰 매년 또는 6개월마다 디지털 비전과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쪽으로 지표를 수정·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올해 기업은행은 신규 디지털고객 유치 목표를 100만명으로 잡았다. 지난해 말 기준 기업은행 디지털고객이 약 600만명인데 올해 안에 개인고객 95만명, 기업고객 5만명을 유치해 연말까지 70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내년 100만명을 추가로 유치해 2023년 말까지 800만명 달성이 목표다.
기업은행 사례가 다른 시중은행 벤치마킹 대상이 될 지도 주목된다. 다른 은행도 디지털화에 사활을 걸고 있어 구체적 목표치인 디지털 KPI 도입이 필수로 여겨진다. 다만 이를 평가 항목으로 만드는 데는 주저하고 있다. 은행원들이 앱 가입 실적이나 비대면 금융상품 판매 실적에 열을 올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영 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