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스마트폰은 두뇌에 일관성 없는 정보들을 마구 구겨 넣으며 우리를 변화시켰다. 신세대는 본래 캐릭터인 '본캐' 외에 자신의 아바타인 '부캐' 몇쯤은 개성 있게 키운다. 데뷔 3일 만에 구독자 30만을 모은 '가우르 구라'는 370만 구독자 버튜버(버추얼 유튜버)다. 버튜버 입문에 필요한 3D 아바타는 직접 디자인하거나 몇 만원이면 디자인을 맡길 수도 있다. 카메라 앞에서 울고 웃는 당신의 모습은 실시간 '메타버스 인형극'으로 공연된다. 이제 당신은 상어, 축구공, 번개, 스폰지밥 등 무엇으로든 변신한다. 본캐만으론 너무 지루하다.
그 옛날 지킬 박사는 자신의 내면에서 호출한 하이드의 분열적 위협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살해하는 방법으로 하이드를 삭제했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의 위험한 부캐를 미리 보살피고 밝은 햇빛을 쬐며 함께 산책했더라면 끔찍한 부캐 살해는 없었을지 모른다. 외면했을 뿐 정신의학적으로는 한 사람이 보통 10개 정도의 부캐 혹은 하위 인격인 페르소나를 갖는다(다중인격장애 진단이 필요한 경우는 1% 미만이다).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사고와 감정의 멀티태스킹' 능력을 단련해 온 신세대는 메타버스에서 부캐 멀티태스킹 능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그것은 정신적 혼돈이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를 감당해 내는 정신적 역량이다. 심심풀이나 유희가 아니다. 진심이다. '좋아요'를 받지 못한 상처는 직장 상사의 꾸지람보다 더 고통스럽고, 어젯밤 공성전에 함께 참전한 이름 모를 전사의 전우애는 가슴속 깊이 새겨진다.
산업사회는 우리의 환상을 통제하며 발전했다. 우리는 거대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부속품이 되었고, 인간 본성은 소외됐다. 지금은 한물간 매스미디어 시대의 총아 TV는 우리 상상력이 '움짤'도 할 수 없도록 일방적 정보들을 마음대로 주입하며 획일적 인간을 대량 복제했다. 하지만 인간 정신의 근원적 에너지는 스스로 한 시대에 묶어 두려 하지 않는다. 이 힘은 항상 스스로 재창조한다. 견고한 성벽의 끊어진 사다리 아래에 다음 세상으로 연결된 작은 크랙을 찾아낸 신세대는 성문을 열어젖힌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어둠 속에 갇힌 현존재 초월과 변신 환생의 강렬한 소망이다. 획일성과 기계장치와 무차별적으로 TV가 주입한 정보들로 가득 채워진 586께서 신세대는 분열적이고 코인과 스마트폰 중독자들이라며 너무 걱정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필자는 1996년 과학동아에 '인터넷 중독증'을 소개하는 글 하나를 썼다가 3대 일간지와 3대 방송사 인터뷰에 모두 출연하는 예상하지 못한 주목을 받았다. 당시엔 '컴맹' '컴퓨터 공포증'이란 말이 유행했다. 회사에서 도태될까 전전긍긍하며 가족 몰래 컴퓨터 학원에 다니던 중년 남성이 밤마다 '컴퓨터 귀신'에게 쫓기는 악몽에서 식은땀 흘리며 깨어나던 시절, 그 끔찍한 컴퓨터가 너무 좋다며 사이버공간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세상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0년 후 국가청소년위원회 위원이 되었을 때는 기존의 대표 청소년 문제인 본드 흡입, 폭력, 성 문제를 인터넷과 게임중독이 다 쓸어내고 압도적 1등이 돼 있었다. 이제 모든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메타버스로 간다. 블록체인과 토큰 기술로 '정보'뿐만 아니라 '가치'도 광속으로 이동한다. 물리 세계의 제약이 적은 3차 서비스산업이 먼저 메타버스로 이주하고, 제조업·농수산업과 연결된다. 우리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 부르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소꿉장난을 통해 '엄마'나 '아빠'가 되어 보고, 진짜로 '부부싸움'을 한다. 어린아이는 현실과 환상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유연한 사고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소꿉놀이 소품들이 엉성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상현실(VR) 헤드셋은 필요 없다. 무의식의 환상 능력은 앞으로 마주칠 중요한 인물들의 대역을 스스로 맡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고, 언젠가 마주칠 미지의 대재앙에도 공포심을 조절하는 법을 연습하며, 언젠가 그들이 진짜 부모가 되었을 때를 준비한다.
신화를 잃은 현대인에게 메타버스는 무척 매력적인 무대다. 현실 세계의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메타버스는 인간 정신의 신화적 존재를 허용한다. 환상 동원 능력이 좀 부족한 분께도 다양한 참여 도구를 제공하는 메타버스는 변신, 환생, 모험, 불멸과 같은 태고적 냄새가 물씬 나는 신화 세계다. 조심해라. 아직은 산적과 무법자와 사기꾼들이 득실거린다. 먼 옛날에는 신화와 전설, 농경사회에서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산업사회에서는 소설책과 매스미디어가 각각 맡았던 역할을 디지털 시대에는 메타버스가 맡으려는 듯하다.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메타버스의 지킬과 하이드](https://img.etnews.com/photonews/2201/1498253_20220127162826_002_0001.jpg)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