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시절이 돌아왔다. 각 부문에서는 숙원사업을 해결할 큰 장이 섰다며 요구사항을 만들어서 후보 캠프에 밀어 넣기 바쁘고, 대선 후보도 한 표라도 더 가져오기 위해 온갖 공약들 쏟아내는 데 열일 중이다.
이런 경향은 농업부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당 후보는 1인당 100만원 이내 농어촌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야당 유력후보도 농업직불금 2배 확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공약이 지켜진다면 누가 당선되든 농업인이 국가로부터 받는 보조금은 크게 늘어나게 된다. 돈을 더 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후보라면 당장의 표도 중요하겠지만 국가 먹거리에 대한 큰 그림을 갖고 그에 맞는 공약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 변종인 오미크론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터진 2020년 초 일부 국가의 농산물 수출 중단 선언은 많은 농산물 수입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밀, 옥수수, 콩 등 주요 곡물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의 상당 부분을 외국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 농산물 금수조치는 일부 국가에 한정됐고, 그것도 단기간 조치로 끝이 났다. 그러나 먹거리 문제의 중요성을 보여 주는 데는 충분했다.
먹거리 불안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 그중에서도 곡물자급률은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하면 2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국민이 소비하는 곡물의 7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식량안보지수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32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해외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수출국의 현지 상황과 환율 등의 외부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주요 곡물의 국제가격은 이미 사상 최고 수준까지 상승한 상태이고, 대미 달러 환율도 1200원을 넘었다. 모두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곡물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불안 요인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질소비료의 주원료인 천연가스와 석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비료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그나마도 물량 구하기가 쉽지 않다. 곡물 수입가격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제 유가도 연일 상승 중이고, 해상 운임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한 가지이다. 향후 먹거리 생산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수입도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른 식량 인플레이션은 당연한 수순이다. 먹거리 가격의 상승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먹거리 가격까지 급등하면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이 받을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가올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먹거리의 국내 생산 및 공급을 확대할 방안을 찾아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수입해야 하는 곡물이라면 안정적 수입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방향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책으로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먹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기본 중 기본인 문제다. 한 나라를 이끌려는 사람이라면 이 가장 기본적 문제만큼은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대책과 정책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력 대선 후보의 공약에서 이런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현재 농업부문은 먹거리 불안 문제 이외에도 농촌 소멸, 기후 변화, 농업인 고령화, 노동력 부족, 생산비 급등 등 수많은 난제에 직면해 있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선 후보라면 농업부문에 대한 비전, 더 나아가 국가 먹거리 정책에 대한 공약다운 공약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선후보에게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갖는 가장 기본적 권리이다. 이런 기본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후보를 보고 싶다.
김윤식 경상국립대 교수 yunshik@g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