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의 호소]승계보다 매각...매물로 쏟아지는 '고령화' 중소기업

높은 세금과 까다로운 조건에 가업승계를 포기한 기업인의 선택은 결국 매각이다.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온 매물 가운데 상당수는 가업승계를 포기한 경우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사모투자펀드(PEF)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2~3세 승계를 포기하는 사례는 급증하고 있다. 국내 신발 원단업계 1위 업체인 동진섬유는 지난달 MBK파트너스와 인수 계약을 마무리했다. 동진섬유는 창업자 최병길 회장이 1968년 설립한 회사다. 2004년 무렵 아들인 최우철 대표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50년 넘게 가업을 이어왔지만 결국 3세로 승계를 포기하고 PEF로 매각을 택했다.

최근 대기업의 M&A가 이어지고 있는 폐기물 재활용 업계도 승계 포기가 근저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다. SK에코플랜트, IS동서 등 대기업은 물론 PEF까지 연이어 매물 확보에 한창이다.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중소형 재활용 업체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것이 주된 이유지만 이면에는 녹록지 않은 가업승계 요건이 매각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 재활용 업체 대표는 “이미 자식과는 공동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다음 세대까지 사업을 물려주기에는 수중에 세금으로 내야 할 현금도 없고, 손주가 원하지도 않는다”면서 “지금처럼 비싸게 값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매각해 현금으로 남겨주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전했다.

승계가 어렵다보니 매각을 제안하거나 다른 우회 방안을 제안하는 서비스도 생겨났다.

일례로 은행, 증권사 등 금융업계는 물론 법무법인, 회계법인에도 이미 가업승계 컨설팅은 핵심 비즈니스로 자리잡았다. 우량 기업 경우 매물로 내놓을 수 있고, 까다로운 상속 공제 요건 탓에 이미 가업승계를 마음먹은 경우에도 현행 세법대로 회사를 물려주기에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신설 사업장을 설립해 후계자를 대표이사로 앉히거나, PEF에 회사를 매각한 뒤 재투자하는 등 다양한 우회로를 택해 가업승계하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조업체 A사 대표는 3년 전부터 아들이 지분을 100% 보유한 회사에 고문직을 겸직하고 있다. A사와 연관이 있는 사업이지만 당장 유의미한 매출이 나오는 것이 아닌데다 향후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신설법인을 세우는 편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회계법인의 조언에 따랐다.

A사 대표는 “회계사는 불법이 아닌 적법한 절세 방법이라고 했지만 결국 편법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부담이 컸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지나치게 충족하기 어려운 요건들로 정당한 가업승계마저도 택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컨설팅을 통해서라도 가업승계에 대처하고 있는 기업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제3자 매각도 가업승계 여부도 정하지 못한 대다수 중소기업은 폐업이나 청산 외에는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 폐업 후 부동산과 설비 등 고정자산을 매각한 현금을 물려주는 것이다. 자연스레 경영자 은퇴와 함께 일자리 역시 없어지는 셈이다.

중소기업계는 '부의 대물림'이라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정상적인 승계까지도 가로막혀 있는 현 상황을 하루빨리 타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대표자 고령화가 폐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중소기업 승계 전반에 대한 환경정비가 필요하다”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우호적 M&A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승계 지원을 통해 기업 영속성을 강화하고 장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윤건일 벤처바이오부장(팀장) benyun@etnews.com, 권건호·유근일·조재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