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의 자전에 해당하는 '스핀'이란 성질을 이용해 자성 메모리 소자의 소비 전력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기술이 나왔다.
포스텍(총장 김무환)은 이길호 물리학과 교수·통합과정 신인섭 씨 연구팀이 위상물질과 자석을 합쳐 스핀 전류를 높은 효율로 발생시키는 소자 구조를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이 물질은 크기가 작지만 많은 스핀 전류가 흘러 차세대 자성 메모리 소자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도체 기반 메모리 소자는 전자가 가지는 전하의 성질만을 이용해 전류를 흐르게 한다. 그러나 사실 전자는 전하뿐만 아니라 스핀이라는 성질을 갖기 때문에 스핀도 흐르게 할 수 있다. 단 이 성질은 불순물의 영향을 받으면 쉽게 사라져 실제 소자로 적용에 한계가 있다.
최근 웨어러블기기 등 소자를 필요로 하는 기기의 크기가 작아지면서 더 작은 소자를 만들기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소자의 크기가 작아짐에 따라 불순물의 영향이 줄어들어 스핀을 활용한 차세대 메모리 소자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반적으로 물질을 구성하는 전자는 스핀 방향이 제각기 다른데 스핀 방향이 모두 같으면 자석과 같은 성질이 나타난다. 연구팀은 반도체 대신 자석을 소자로 이용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다.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정보가 저장되지 않는 반도체와 달리 자석은 자기장으로 스핀 방향을 일제히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전류 없이 정보를 유지한다. 또 자석에 스핀 전류 발생 금속을 붙이면 전하 전류를 통해 스핀 전류를 발생시키고, 이것이 자석으로 들어가 자석의 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 통상 백금이나 탄탈럼 같은 일반적인 스핀 전류 발생 금속을 붙인다.
연구팀은 위상물질인 이텔루르화 텅스텐을 붙여 스핀 전류 발생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또 자석과 위상물질을 접착할 때 경계면에 생기는 손상으로 스핀 전류가 손실되는 문제점을 개선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자석과 위상물질을 원자적으로 평평한 얇은 막 상태로 만들고 이들을 쌓는 방식을 도입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금속 스핀 전류 변환 효율은 10%에 불과한 반면, 연구팀이 개발한 물질은 효율이 500%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메모리 상태 조절을 위해 필요한 전류도 기존 연구보다 열 배 정도 작아 보다 높은 에너지 효율을 구현했다.
이길호 교수는 “위상물질이 스핀트로닉스 응용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