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배터리가 몇 해 전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두 차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지만 최근 들어 중국 제품의 강세가 확연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 3사의 합산 실적이 중국 CATL 하나를 상대하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그런데 아직도 국내 배터리 업계 일각에선 중국 CATL은 '안방의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우습게 보고 있다. 실제로 국내 업계는 원통형 전지는 한물갔다.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는 중국에서만 쓸 수 있는 저급한 기술이라고 오래전부터 평가해 왔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중국 시장이 있어서 그렇고, 세계 시장 진출은 어렵다. 우리 배터리 제조사들은 중국 정부 차원의 몽니로 중국 시장에 들어가지 못했고, 굴절된 통계를 수정하면 진정한 세계 1위 국가는 우리나라”라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배터리 전기차(BEV)에 일찌감치 눈을 뜬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은 우리나라보다 치밀했다. 중국은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 1·2년 내 중대 안전사고가 없어야 하고, 상당한 규모의 제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핵심 모범 기준을 만족하도록 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앞선 배터리 기술이 중국에 흘러나간다는 궤변으로 중국 시장을 멀리했다. 이러는 동안 중국 배터리 산업은 우리보다 더 잘 설계된 보조금 정책 등에 힘입어 무섭게 성장하며 현재 '배터리 미격차' 상황이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LG에너지솔루션의 소형 원통형 전지가 테슬라의 중국공장에 공급되고, SK온의 중대형 파우치가 중국과 합작사를 통해 중국 배터리 전기차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잘못된 기술, 시장 분석과 전망으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은 사면초가에 처할 수 있다. 복잡다단한 기술 전망을 차치하고라도 중국은 우리나라 배터리와 배터리 전기차 산업이 전략적으로 절대 회피해선 안 되는 시장이다. 우리가 중국 시장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 내수 전기차 시장이 매년 100% 이상 확대되는 것도 있지만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가 중국 밖 글로벌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기 시작해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니오, 샤오펑뿐만 아니라 BYD 전기차 등이 중국 밖으로 판매될 때 우리 배터리 채택을 검토할 수 있도록 중국 공략을 서둘러야 한다.
중국 내수와 중국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 공략에 애쓸 필요가 없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비록 우리나라 배터리 제조사 제품의 상품성이 중국보다 조금 더 좋다 하더라도 원료, 중간 소재에 절대적 우위에 있는 중국 배터리 시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또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달리려는 일본 배터리 제조사도 있다. 여기에 전세대 전고체 전지인 리튬 폴리머 이차전지에 천착하다 수십 년간 배터리 산업 암흑기를 지나온 유럽, 미국 신흥 배터리 제조사의 공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도 인지해야 한다.
중국 본토 시장과 중국 배터리 전기차 제조사 공략에 소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중국의 CATL, BYD, CALB, AESC 등이 삼원계 분야 지배력을 더 올리기 전에 우리나라의 파우치 타입과 더불어 호환성 있는 중대형 각형을 빠르게 개발해 다시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우리나라 내수 시장을 쉽게 생각한 일본 완성차 업계의 전략적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배터리 제조사의 '새로운 십년 대계'에 실수가 없길 기대한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 chulw.par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