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전 렌털 시장은 1990년대 초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이후 초기 도입 비용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선택지' 성격이 강했다. 소유 관념이 강했던 탓에 일부 상품을 제외하고 렌털 수요는 크지 않았다. 국내 가전 렌털 계정이 1000만을 넘은 게 20년이 훌쩍 지난 2017년인 것을 감안하면 성장 속도는 느린 편이었다.
최근 수년 간은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해 국내 가전 렌털 계정은 1900만을 돌파했고, 올해 '2000만 계정' 달성이 유력하다. 1000만 계정을 돌파한 지 불과 5년 만이다. 가전 렌털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1가구 1렌털' 시대도 임박했다.
◇가전 렌털 가구당 0.8개 이용…구독경제 꽃 피워
국내 가전 렌털시장이 형성된지 약 30년 만에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업체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제품과 가격 정책이 다양화되고 고객 선택지가 넓어졌다. 단순히 빌려 쓴다는 개념에서 합리적인 소비와 다양한 제품을 경험하고자 하는 고객층이 늘면서 렌털 시장에 주목도 늘었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은 가전 렌털 시장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전 사용량이 늘었고 그만큼 교체 수요도 커졌다. 소비주체로 부상한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세대가 소유가 아닌 경험을 중시하면서 렌털 수요를 견인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렌털의 강점인 주기적인 제품 관리 서비스는 코로나19로 인한 높아진 위생관념을 충족시켰고, 가전 렌털 전성기를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우리나라 전체 가구당 가전 렌털 계정 수는 2017년 0.53개에서 지난해 0.82개로 늘었다. 단순 수치만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렌털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국내 렌털 가전은 계약기간에 따라 교체 주기가 4~5년이다. 또 주력 품목인 공기청정기와 정수기의 보급률은 60~70%에 달한다. 두 품목의 매출 비중은 렌털 업계 평균 절반이 넘는다. 긴 교체 주기와 높은 보급률을 고려하면 매해 100만 계정 이상의 순증도 의미 있는 성장으로 볼 수 있다.
렌털 시장은 신규 고객 확보와 함께 기존 고객을 지키는 것 역시 실적에 해당한다. 고객은 더 좋은 조건에 따라 브랜드를 바꾸기 때문에 신규 계정 하나를 확보했다 해도 기존 고객이 이탈할 경우 실적은 '제로'가 된다.
업계 관계자는 “1000만 계정이 넘는데 30년 가까이 걸렸지만, 추가로 1000만 계정을 달성하는데 10년이 채 안 걸린 것은 의미가 크다”면서 “최근 몇 년 간 계정 순증이 주춤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렌털 상품이 대중화돼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기존 고객을 지키는 싸움이 치열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보적 1위 코웨이…중위권 싸움 치열
국내 가전 렌털시장 1위는 코웨이다. 지난해 코웨이는 국내에서 전년 대비 16만 계정이 순증하며 650만 계정을 확보했다. 2019년 600만 돌파 이후 증가세가 주춤하다. 하지만 국내 최대 고객을 확보한 만큼 기존 고객 이탈을 막는 동시에 10만 이상 신규 고객을 확보한 것은 의미가 있다.
시장 2위는 최근 무섭게 성장 중인 LG전자다. 2009년 시장 진출 이후 자사 가전 지배력을 높이는 채널로 활용해 왔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70만 계정이 순증하며 급성장했는데, 지난해는 280만 계정을 확보하며 2위를 유지한 것으로 파악된다.
3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쿠쿠홈시스는 220만 계정을 확보하며 216만 계정을 기록한 SK매직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3위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 정수기 모델인 '인앤아웃 10's 정수기' 라인업이 지난해 전년 대비 40% 이상 판매량이 성장한데다 얼음정수기 역시 두 배 이상 팔리면서 실적을 견인했다.
청호나이스와 웰스는 연간 10만 계정씩 꾸준히 성장하면서 지난해 각각 170만, 90만 계정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된다.
가전렌털 6개사의 지난해 총 계정 수는 1626만개로 전년 대비 6.3%가량 성장했다. 최근 3년간 성장률 12%에 절반에 그쳤다. 주요 렌털 품목인 공기청정기, 정수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신규보다는 교체 수요가 늘어난 요인이 크다.
현대렌탈케어와 바디프랜드도 각각 지난해 40만 계정 이상을 기록했다. 바디프랜드는 안마의자를 중심으로 정수기 등 렌털 품목을 늘리고 선납금 제도로 월납부액을 유연하게 구성하는 가격정책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1가구 1렌털 시대 성큼
올해 국내 가전 렌털 계정 2000만 돌파가 확실시 되면서 '1가구 1렌털' 시대도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집이나 자동차만 생각하던 렌털 인식이 가전에도 뿌리를 내리면서 소비 형태로 자리잡았다.
경제 상황과 소비문화 등을 고려하면 가전 렌털 전망도 밝다. 저성장 기조에 접어들면서 초기 도입 비용이 적은 렌털은 매력적인 소비형태다. 특히 소비 주체로 부상한 MZ세대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함에 따라 다양한 제품을 월 단위 소비로 이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대부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소유권이 이전됨에 따라 소유와 경험을 오가는 합리적인 소비 형태로 인식된다.
가전 업계 역시 불확실성이 커진 대외환경 속에서 단순 상품 판매보다는 4~5년간 안정적인 수익이 창출되는 렌털시장 공략을 강화하는 추세다. 주기적인 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소비자 요구가 다양해지면서 가전 종류도 늘어나고 프리미엄화되는 것 역시 비용 부담을 줄이는 렌털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한계도 존재한다. 현재 가전 렌털 품목은 공기청정기와 정수기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보급률이 올라가면서 성장동력 발굴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업계는 환경가전을 넘어 인덕션, 냉장고, 전기오븐 등 주방가전과 TV 등 생활가전까지 렌털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취향을 고려한 매트리스와 식물재배기, 맥주제조기, 커피머신 등도 렌털 품목으로 끌어들이는 등 신규 고객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가구의 절반 이상이 공기청정기, 정수기를 보유함에 따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 품목 다변화가 최우선 과제”라면서 “올해는 교체수요를 노린 기존 품목 성능 개선과 함께 매트리스나 식물재배기, 멀티조리기기 등 렌털 품목 다변화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