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대학이 준비해야 할 새로운 세상

서강대 제16대 심종혁 총장
서강대 제16대 심종혁 총장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전통 규범과 관념이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빠른 속도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생산기술 발전으로 발생한 공급 과잉은 '공급 시대'에서 '수요 시대'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수요 시대'에서 '공유 시대'로 지구촌을 바꾸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더욱 가속되고 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변화를 맞은 젊은 세대에게 대학은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진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학에서 해야 할 연구와 수업, 선후배 및 동료 간 교류, 사회와의 만남을 통한 미래 준비 등에 제약이 많은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지식 교육보다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서 지식을 조합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 즉 고기 잡는 방법을 넘어 고기 기르는 방법을 가르치는 대학 교육이 돼야 한다. 교육부에서도 정의를 내렸듯이 교육-연구-산학협력 3개 축에서 연구는 교육의 재료이며, 연구 결과를 산·학 협력으로 검증하는 실효성 있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세상은 변했다. 아니 지금도 변하고 있다. 예컨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O2O(Online to Offline)나 핀테크에 능한 인재를 찾는 기업이 많았다. 최근에는 메타버스나 NFT(대체불가토큰)가 각광 받고 있다. 앞으로는 STO(증권형 토큰, Security Token Offerings)나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를 다룰 수 있는 인재가 요구될 것이다. 10년이 안 되는 시간에 생긴 변화이다. 격랑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유목민(nomad)형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오늘날 대학의 새로운 소명이 된다. 이 같은 추세에 맞춰 캠퍼스 없이 여러 국가를 돌면서 경험을 통해 배우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미네르바 대학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지난 1년 서강대 총장으로서 시대 요구에 발맞춰 '항상 한발 앞서'(Always One Step Ahead) 선도적 교육-연구-산학협력 축 구축에 신념을 바치는 등 노력해 왔다. 한때 영어 잘하는 서강대에서 이제 인공지능(AI) 잘하는 대학으로의 탈바꿈을 위해 모든 학생이 AI 기초와 AI+X 교육을 4과목 수강하도록 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기업과의 산·학 협력을 통해 기업 수요 기반의 AI대학원도 신설했다. LG전자·스마일게이트 전공과 부설 연구센터를 꾸리고 커리큘럼 설계부터 학생 선발까지 기업과 머리를 맞대고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육성한다.

다른 대학의 대학원이 AI 기술 자체 탐구에 집중한다면 서강대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AI 기술 활용에 중점을 둔다. 서강대 교육은 개교 때부터 예수회 교육이념에 맞춰 실용성에 맞춰져 있다. 기업의 재정적 도움과 공동연구, 공동 지도를 통해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수요와 방향을 실시간으로 고려해서 기업 수요가 반영된 교과목으로 교육하고, 졸업 후 입사해서 해당 업무를 지속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한다.

[ET시론]대학이 준비해야 할 새로운 세상

입학생 전원이 등록금 전액 장학금과 학업 장려금을 받으며 연구에 집중한다. LG전자 프로그램은 취업보장형 계약학과 프로그램이다. 계약학과 프로그램은 향후 서강대 특성화 분야와 맞는 기업과 지속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대학 최초로 메타버스 전문대학원도 설립했다. 메타버스 비즈니스,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트랙으로 융합형 역량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메타버스 전문대학원의 2022학년도 첫 신입생은 코로나19 시국에도 우수한 인력으로 4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AI 기반의 개방형 메타버스 대학(Metaverse University)도 주요 기업과 구축하고 있다. 교육, 연구, 창업, 평생교육 플랫폼을 구축하고 세계 400개 예수회 대학과도 연합할 계획이다.

'성을 쌓으면 망하고 길을 열면 흥한다'는 옛말이 있다. 급변하는 세상에 대학이 안주하면 인류 문명에 대한 응용성이 사라지게 된다. 대학도 학문도 융합하고 교류해야 하는 시대다. 대학 발전과 사회 기여 중심에는 교수가 있다. 교수 연구 역량은 볼링에서 킹핀이다.

서강대는 이런 시대적 융합연구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교수 제2전공(겸직)제도를 신설했다. 교수가 자신의 원소속 이외 다른 전공에서 교육과 연구 수행을 겸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학과 벽을 낮추고 다양한 융합 교육과 연구를 장려하기 위한 목적이다. 선택 폭을 넓혀 창의적이고 실용적 연구 활동을 더욱 쉽게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경영학 교수가 블록체인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컴퓨터공학과 교수와 교류하며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면 소속을 양쪽에 둘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경영학과 컴퓨터공학 양쪽에서 그 업적을 인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적극적 연구가 가능케 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교수 복수전공(Double Major)으로 보면 된다. 석학교수제도도 신설해 교수를 네 명 선발했으며, 만 70세까지 지속적으로 연구에 전념하는 터전을 마련했다.

숲이 우거지면 새는 자연히 모여드는 법이다. 산·학연 협력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육성 프로그램과 융합형 연구진이 앞장서면 빼어난 인재가 모여들 것임이 분명하다. 서강대에 '아트&테크놀로지'라는 전공이 있다. 10년이 됐다. 융합 학문으로, 국내에서 처음 시도했다. 돌이켜보니 가장 잘한 학문이고, 자랑할 만한 전공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과 기술에 잠재력이 있는 재능 학생, 이른바 '끼 있는 학생'이 전공 벽을 허물 수 있었다. 학문 간 융합이 디지털시대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생도 부전공으로 하던 것에서 확장해 연계전공, 학생설계전공, 복수전공으로 하고 있다. 서강대는 60여년 전 개교 때부터 부전공, 제한 없는 복수전공을 통해 융복합형 인재를 배출해 왔다. 일례로 문예창작이나 연극영화 등의 전공이 없는 데도 박찬욱·최동훈 영화감독 등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10여명의 스타를 배출하고 있다. 이런 융합 교육과 연구를 가속하기 위해 최근 전담 조직인 '융합교육원'도 신설했다.

서강대는 일찍이 연구재단의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 사업에서 기술 이전과 아이디어 사업화 선도모델을 제안했다. 그 모델을 통해 설립된 공동사업화 법인이 6~7년 지난 올해부터 기업상장 등 결과가 나오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 강점 특화 분야로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지능형 메타버스, 스마트 헬스케어, ESG 등 분야의 기업협업센터(ICC, Industry Coupled Cooperation Center)도 운영하고 있다. 대학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에 삼성전자 부사장을 영입해서 교수로 임용했으며, 기업과 동문회를 통해 자본금 확충 및 투자금도 받아 활동에 들어갔다.

대학은 사회 발전보다 한발 앞서 변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문화, 메타버스 시대 등 급박하게 변화하는 시대에 선도적으로 맞서야 한다. 캐나다 토론토대와 몬트리올대가 AI를 사전 연구해서 세계적 대학이 되었듯이 10년 뒤 대한민국 산업을 위해 포스트(Post)-AI 분야를 찾아서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가능성의 항해를 시작해야 한다.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바꿔야 한다. 미래인재는 자기 안에 갇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같은 사물이라 해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듯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미래세대는 기성세대가 만든 전망대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든 전망대에 올라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 역할을 대학이 앞장서야 한다.

서강대 총장 심종혁 신부 secretary@sogang.ac.kr

○…심종혁 서강대 총장은

심종혁 서강대 총장은 1974년 서강대 수학과에 입학, 물리학을 복수전공했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물리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웨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사목학 석사, 이탈리아 그레고리오대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서강대 교수로 부임해 총무처장, 기획처장, 대외협력처장, 도서관장, 교학부총장,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며 2021년 2월 1일 서강대 제16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심 총장은 수학, 물리학, 종교학, 신학 등을 두루 연구하고 인문·자연계열을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 지식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