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외탈세 온상된 해외신탁…국세청 "신고 의무 도입 추진"

위·수탁자 누락시 탈세 못 막아
조세 회피 사례 등 연구 용역
국외정보 접근 한계 극복 노력
"각국 대응 확인 후 제도 마련"

국세청이 신종 조세회피 방법으로 떠오른 해외신탁을 통한 역외탈세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 신탁재산 신고 의무 도입을 추진한다.

국세청은 24일 해외신탁재산 신고 제도 도입을 위해 해외신탁을 이용한 조세 회피 사례와 각국 대응 현황을 수집연구하는 용역을 발주했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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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은 해외신탁이 재산의 소유권 이전이라는 특성과 과세관청의 국외 정보 접근 한계로 인해 역외탈세에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세청은 자녀를 수익자로 두고 재산을 불법으로 상속, 증여한 사례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신탁(trust)은 재산의 소유자가 부동산, 유가증권 등의 재산을 운용할 수 없을 때 신뢰할 수 있는 수탁자에게 재산의 관리 또는 처분을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수탁자의 신용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신탁회사들이 신탁재산을 운용한다. 신탁회사에 맡겨진 재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수령받는 사람이 수익자다. 일반적으로는 위탁자 본인을 수익자로 지정하지만 별도의 수익자를 지정할 수 있다.

해외신탁은 해외에서 체결되는 재산 관련 사적인 계약이다. 신탁 설정과 운용에 대한 등기·등록·신고 여부와 신탁의 조세법상 지위가 나라마다 다르다. 또한 위·수탁자와 신탁재산 명세를 거주지국 과세관청에 신고할 의무가 없다는 점 등의 특성 때문에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적발이 어렵다. 현행 외국환거래법상 해외 예금과 신탁거래에 대한 신고의무가 있지만 신고서는 주로 해외은행이 출시하는 예금 및 신탁에 대한 가입자 정보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 경우도 고의로 누락하는 경우 탈세 여부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때문에 국세청은 현재 운영 중인 해외현지법인 및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에 이어 해외신탁 재산에 대해서도 세법상 신고의무 도입을 고려하는 등 조세회피 방지대책을 검토 중이다. 현재 해외현지법인 명세 제출의무 이행 주체를 회사형 집합투자기구에서 신탁형 집합투자기구와 자산운용사까지 확대하는 것을 포함한다.

해외에서도 일부 신탁회사들은 조세회피처 수준의 비밀 유지를 약속하는 등 신탁을 통한 조세회피는 이미 전 세계적인 과세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역외탈세 문건 '판도라 페이퍼스'에 따르면 사우스다코타의 신탁 자산은 최근 10년 동안 4배 이상 늘어 3600억달러(약 427조원)에 달한다. 사우스다코타주 내 최대 신탁회사인 사우스다코타 트러스트에는 54개국에 고객이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역외탈세 방식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국가 간 금융정보 교환 범위가 넓어지는 등 조세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과세 관청의 감시망에 포착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익자가 누군지 바로 파악하기 어려운 신탁으로 자산이 몰리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신탁의 특수성과 일부 회사들의 비밀유지 등으로 인해 과세관청의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어 신탁재산 신고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며 “연구를 통해 해외 신탁의 현황과 각국 대응 방침 등을 확인한 후 제도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