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중국 반도체 굴기' 위기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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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간 중국 반도체 시장은 빠른 성장세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제조 2025'를 타깃으로 하는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은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견제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19세기 중국과 영국 간 아편전쟁의 원인이 차와 아편이라면 21세기 중국과 미국 간 무역전쟁은 반도체에서 시작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가장 예민한 아이템이 반도체다.

세계 통신장비업계 1위로 올라서서 5G 통신망을 장악해 가는 중국 화웨이에 대만과 미국기업이 첨단 반도체의 공급을 막으면서 '화웨이 질주'가 멈췄다. 미국은 이어 우방국이 화웨이 장비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나아가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중국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수출을 금지하면서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생산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반도체라는 산업의 쌀을 먹으면서 이뤄진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아야 세계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 반도체 시장의 30%는 한국기업이 제일 잘 만드는 메모리 반도체다. 이 덕분에 한국의 국격이 올라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대만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 TSMC로 인해 중국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아무리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한다 해도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집요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미-일 반도체 전쟁이 1990년대 초·중반대까지 십수년 지속된 사례를 보면 세계 경제와 산업을 주도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중심에 있는 반도체 산업을 두고 벌어지는 미-중 무역전쟁은 수십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먼 미래에 중국과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서 어느 선에서 타협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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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반도체 산업 종사자에게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세계 반도체 생산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절대적이지 않지만 반도체 전시회만큼은 지난 10여년간 중국이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들의 표현대로 '대국' 스케일이었다. 세계적인 회사가 미국 전시회에는 나가지 않아도 중국 전시회에는 대규모로 출품했다. 중국시장은 아직 크지 않지만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신시장이기 때문이다.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반도체 후공정과 팹리스 분야에서 중국기업은 지난 10여년간 혁혁한 성장을 이뤄 왔다.

한편으로 거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10여년 전에도 중국 정부는 10여개 300㎜ 반도체 팹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전까지 실질적으로 투자가 이뤄진 업체는 SMIC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난 몇년간 중국 정부가 투자한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미국 무역제재 직격탄을 맞았다. 푸젠진화와 같은 회사는 지지부진하고, 칭화유니는 부도를 낸 이후 국영기업으로 주인이 바뀌었다. 중국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는 대부분 처음 일정보다 연기됐다. 어떤 회사는 팹 골조만 만들어 놓고 10여년간 방치했다. 20여개 신규 팹 건설 계획이 있었지만 일부만이 진행됐고, 상당수는 프로젝트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다.

코로나19가 게임 룰을 송두리째 바꿨다. 정부 보조금을 제외하면 수익을 내는 팹이 거의 없었던 중국에서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공급난이 발생하면서 가동률이 급격히 올라가고 판매단가도 높아져서 중국 팹 대다수가 큰 수익을 내고 있다.

최근 중국 반도체 기업은 연평균 30%대의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생산량 기준으로 3년 후 한국을 따라잡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제재에도 중국 대표주자 SMIC은 급성장하고 있다. 오랜 기간 적자를 보조금으로 메우면서도 지속적으로 반도체 팹에 투자했던 중국 팹들이 반도체 칩 부족 상황에서 수익을 올리며 제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중국 반도체 기업의 주가도 고공비행하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한국회사보다 5배, 10배 높은 시가총액으로 평가받으면서 엄청난 자금이 주식시장에서 반도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수십조원, 수조원대 시가총액을 기록하는 중국 반도체 회사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도 만만치 않다. 정부 보조금을 통해 액정표시장치(LCD), 태양열, 배터리, 발광다이오드(LED) 산업을 부양한 중국은 이제 다른 분야의 보조금을 줄이면서 반도체 산업 보조금을 늘리고 있다. 반도체 생산뿐만 아니라 팹리스, 후공정,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수백조원 규모의 정부 주도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 팹이 적자를 냈지만 20여년 동안 장기적 계획으로 반도체 산업에 계속 투자해 왔다. 그 덕에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공급망 위기에 가장 큰 혜택을 본 나라가 됐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가 국가안보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100조원을 쓰든 600조원을 쓰든 반도체 굴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5년제 단임 대통령제인 한국에서는 이런 장기적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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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산업 앞에 탄탄대로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전략물자 통제와 지식재산권 보호라는 무기로 중국 반도체 굴기를 막아설 것이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EUV 스캐너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앞으로 몇십년 동안 중국 반도체회사가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산업혁명 이후 서구 과학기술의 총합이라 할 수 있는 EUV 스캐너와 이 장비에 들어가는 30만개 부품의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것은 장비 한 대를 만들어 내는 차원의 일이 아니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도체 공급망의 탈 중국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장벽, 핵심 소부장 수출 금지뿐만 아니라 중국기업에 지식재산권 보호와 보조금 축소를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다. 복잡한 글로벌 공급망 체계 아래에서 중국이 단기간에 반도체 자립을 이뤄 낼 수 없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수백조원을 투자해서 반도체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인터넷이 중국 인터넷과 중국 바깥의 인터넷으로 양분됐듯 반도체 생태계도 중국 시장과 중국 바깥 시장으로 조금씩 갈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에서 세계 반도체 절반이 소비된다고 강조하지만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폭스콘 등 전자제품 임가공 수요를 제외하고 중국 내 자체 수요는 세계 전체 수요의 20% 수준이다. 게다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중국 전자제품 임가공 산업은 베트남, 인도 등으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현지에 공장을 운용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인텔, TSMC 등을 제외한 토종 중국 반도체 업체의 웨이퍼 투입량은 세계적 관점에서 볼 때 아직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다.

지역별로 볼 때 중국의 반도체 장비 투자액 성장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반도체 팹 투자는 한국(삼성, SK), 대만(TSMC, UMC) 등 해외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SMIC 등 중국 토종기업의 설비투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성숙공정이 주를 이루고 반도체 첨단기술은 많이 부족하다. 지난 십여년간 중국 정부 주도로 파운드리 산업에 수십조원의 자금이 투자됐지만 지난 10여년간 중국 파운드리 산업의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역성장했다.

중국 반도체 투자에 한국기업이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도 없다. 중국 정부가 LED, 태양광, LCD 투자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메모리를 포함한 반도체 첨단 분야의 기술 장벽은 이보다 훨씬 높다. LCD 생산에는 3~4일이면 되지만 메모리 반도체는 서너 달이 걸린다. 한국과 대만에서 우수한 엔지니어를 아무리 데려가도 첨단 반도체의 수많은 공정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이 쉽지 않다. 수천, 수만명의 집단적 협력이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에서 중국의 약진은 어렵다. 중국의 반도체 종사자조차도 팹리스나 후공정 분야에선 자국 기업의 성공을 자신하지만 전 공정 분야에선 확신하지 못한다.

서플러스글로벌 용인팹 내부 전경
서플러스글로벌 용인팹 내부 전경

중국기업이 앞으로 우리 기업의 위협적인 경쟁자로 떠오르겠지만 반면에 우리에게 중국 시장은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 한국, 대만, 일본, 미국, 유럽과 같이 반도체 생산 역사가 오래된 성숙 시장에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반도체 업계에서 수많은 반도체 프로젝트가 역동적으로 추진되면서 신규 공장이 들어서고, 가장 활력 넘치는 곳이 중국이다.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 시장같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은 없을 것이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장비, 재료 분야에서 국산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상당한 부분은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미-중 무역전쟁 이후 수입처 다변화를 위해 한국산 제품을 찾는 중국 반도체기업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다. 소부장의 중국 수출 기회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인구가 30분의 1밖에 안 되는 한국이 중국과 모든 분야에서 대등한 경쟁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핵심경쟁력이 있는 분야에서는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

20여년간 사업하면서 늘 하는 고민이 '차별화한 경쟁력'이었다.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정부, 우호적인 금융시장, 수많은 우수 인재를 배경으로 무섭게 추격해 오는 중국기업이 두렵기도 하지만 '차별화한 핵심 경쟁력'과 5년, 10년을 내다보는 긴 호흡으로 중국 시장에 접근한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다.

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 bruce@surplusglobal.com

◇김정웅 대표는…

연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30년간 40여개국 지구촌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수십억달러를 사고팔아 온 무역 일꾼이다. 2000년에 기업 간 전자상거래회사인 서플러스글로벌을 설립해 반도체 중고장비 분야 세계 1위 강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012년 발달장애인 가족을 치유하고 지원하기 위해 '함께웃는재단'을 설립해서 이사장직을 맡는 등 사회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2019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개최된 자폐전문 박람회 'Austism Expo'의 조직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2015년 6월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 10월 무역의 날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서플러스글로벌은 2018년 포브스 아시아 200대 유망 기업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