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2019년에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년 뒤 비전은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한층 진화했다. 투자액이 애초 계획보다 38조원 늘어났다. 한 기업의 사업 전략이 아닌 'K-반도체 전략'이라는 국가사업으로 거듭났다. 10년 뒤에는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의 위상을 고스란히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달성할 것이어서 기대감이 컸다.
1년 만에 기대는 점차 우려로 바뀌고 있다. 2030년 시스템 반도체 1위가 가능한가. 시곗바늘은 계속 움직여서 '데드라인'이 어느새 8년 앞으로 다가왔다. 그 사이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 재진입을 선언하며 천문학적 파운드리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171조원 투자가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인텔과 비교하면 돋보이지 않는다. 인텔은 투자 건마다 100조원(10년 간)이 넘었다. 총 금액이 300조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TSMC는 50%를 넘는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5나노와 7나노 등 첨단 매출 비중을 더 확대하고 있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5나노 이하 첨단 공정 수율 문제가 잇따라 제기된다. 삼성전자가 최근 발표한 엑시노스2200의 성능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발열 등 문제로 갤럭시S22 일부 제품에만 적용되며 실망으로 바뀌었다.
여러 지표가 2030 시스템 반도체 1위 달성이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알린다. 속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의 한 척도인 파운드리는 설계부터 패키징·검사까지 아우르는 생태계에 의해 좌우된다. 설계 측면에선 팹리스 설계 지원을 돕는 디자인하우스 세계의 1위는 여전히 TSMC 협력사인 GUC가 버티고 있다. 인텔은 공격적인 파운드리 투자 중에도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10억달러 펀드를 조성했다. 후발주자인 만큼 반도체 설계자산(IP)부터 설계자동화(EDA) 툴까지 협력 기반을 강력하게 다져 놓겠다는 포석이다.
생산 측면에서 TSMC와 인텔은 자국 중심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대만은 반도체 소부장 생태계를 이미 TSMC와 이들의 패키징 협력사가 주도한다. 그만큼 시스템 반도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소부장이 성장했다. 인텔의 경우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를 업고 커 나갈 기회가 충분하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여전히 메모리 중심이다. 시스템 반도체가 '비메모리'라는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30년 넘게 이어 온 메모리 중심 생태계를 시스템 반도체로 확장하지 않으면 2030년 세계 1위 목표는 묘연하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를 축으로 더 강력한 설계·IP 기반을 닦아야 한다. 소부장도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 걸맞은 제품 개발과 시장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와 설계·IP 기업, 소부장 기업이 더 끈끈하게 협력해야 한다. 소부장의 혁신 제품을 삼성전자가 우선 테스트하고 공급망에 적극 편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 산업 속 기업이 투자하고 협력을 가속화할 각종 유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
권동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