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정책 폐기를 앞세운 후보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원자력은 국민 경제를 뒷받침하고 기후위기 극복을 견인하는 국민 에너지로 자리매김할 기회를 다시 한번 얻었다. 소중한 기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원자력계는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차기 정부도 원자력 정책을 수립·집행하는 데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키길 희망한다.
첫째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 탈원전 정책은 거짓으로부터 잉태됐다. 2017년 6월 고리 1호기 퇴역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며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의한 직접적 사망자는 없었다. 거짓에 바탕을 둔 신념은 현실과 괴리된 탈원전 정책으로 이어지며, 국민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차기 정부는 이런 치명적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원자력을 비롯한 모든 에너지원을 평가하고, 국민과 후세에 최선인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법과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탈원전 정책은 법적 근거가 희박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토대로 만들고, 국무회의 의결 이후 강행했다. 법령에서 에너지 관련 계획을 수립할 때 거쳐야 할 절차를 무시했다. 현 정부의 초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탈원전 정책을 집행하면서 부당한 업무지시를 해서 담당 공무원의 불법 행위를 유발했다. 이러한 비정상적 행위는 탈원전 정책이 법적·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것에서 기인한다. 차기 정부는 관련 법령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고,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집행 실무자인 공무원의 적극 행정과 이해관계자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다.
셋째 소통에 진심이어야 한다. 현 정부는 원자력 전문가의 의견을 철저히 무시한 채 탈원전 정책을 강행했다. 그 결과 현실성 없는 에너지 정책이 난무하고, 한전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원전산업 생태계는 붕괴했다. 이해관계자와의 소통도 부족했다. 주민 의견수렴이 부족했다며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를 시작했지만 정작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은 원전 주변 지역주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차기 정부는 우리 편 의견과 목소리만 듣는 선택적 의견수렴을 지양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과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원전 운영과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해 우려가 큰 지역사회 및 주민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신뢰를 중시해야 한다. 현 정부는 국내에선 원전이 위험하다며 탈원전을 강행했다. 해외에서는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홍보하며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모순된 언행은 원전 수출에 장애로 작용했고, 우리나라 신뢰도까지 떨어뜨렸다. 국가 신뢰도는 원자력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 핵연료 공급 등 원자력 이용에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를 해외에서 공급받고, 타국과 원자력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상호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차기 정부는 현 정부의 우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원자력 이용에 관한 메시지를 관리하고, 언행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미국과 원자력 동맹을 맺고 원전 공동 수출을 추진하기 위해 상호신뢰를 공고화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다섯째 민간 자생력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 원전산업은 정부 주도로 육성됐다. 국내 원전업체는 경영을 정부 발주 사업에 의존해 왔다. 그러다 보니 많은 원전업체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차기 정부는 당장의 위기만 모면하는 정책보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원전업체가 자생력을 길러서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정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jhmoon86@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