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개봉한 SF영화 '허(Her)'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편지를 대필해주는 내성적인 주인공이 부인과 결별하고 무료하던 일상을 달래기 위해 인공지능(AI) 운영체제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면서 점차 남녀 간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사람과 AI 사이 사랑을 이슈화해서 몇몇 평론가와 철학자, 인본주의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요즘 출시되는 AI 스피커의 성능을 보면, 사람과 AI 기기 간 감정 교류가 가능한 날도 멀지 않은 듯하고, 영화 속 AI 주인공인 '사만다'도 가까운 미래에 만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AI를 기반으로 하는 감정 교류 실현 핵심 기술은, 감정을 범주화하고 그 강도를 수치화하는 것이다. 뇌파, 땀 분비, 체온, 심박수 변화 등 생체신호 측정 기술과 영상 인식 기술, 목소리 인식 기술 등 발달로 감정을 범주화하고 강도를 수치화하는 데 어느 정도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선진국형으로 바뀌면서 직장에서 감정적인 스트레스로 고통받을 수 있는 감정노동자 노동 인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1년 현재 전체 노동 인력의 약 42%(1164만 명)로 추산되고, 화가 난 고객을 응대하는 시간이 업무시간의 4분의 1 이상인 노동자는 23%(623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고객 '갑질'로 정신질환 산재 신청이나 이직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직장인 정신건강 관리가 시급하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마땅한 해결책이 아직은 없다.
정보통신기술(ICT)과 AI 기술이 최근 급속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심박수, 체온, 체열, 전기전도도, 얼굴표정, 목소리 변화 등의 데이터를 수월하게 수집할 수 있다. AI 기술을 이용해 이러한 다양한 감정 관련 신체화 반응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 급성 스트레스와 만성 스트레스 상황을 적시에 알려주고, 스트레스 해소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 개발도 가능한 시점에 와 있다. 다만, 감정적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화 반응이 문화적, 개인적, 상황적 차이가 있으므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와 기술적 진보 또한 필요하다.
감정적 스트레스를 스스로 풀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은 ICT와 접목해 일상생활에서 크게 노력을 들이지 않고 적용해 볼 수 있다. 한의학적인 치료법을 ICT와 접목하면 스마트밴드를 통해서 스트레스 이완에 효과적인 경혈점을 편리하게 자극할 수 있다. 바쁜 업무시간 중에도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적용해 볼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기술이다.
감정노동자 스트레스를 경감시키기 위한 노력 일환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직장인의 감정적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는 정신건강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 개발 과제가 곧 발주될 예정이다. 쉽게 말하면, 정신건강 디지털 트윈이란 실제 나의 정신건강 정보를 가상세계에 모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ICT와 AI 기술을 활용해 현재 감정적 스트레스 상태를 예측하고, 개인의 체질이나 기질, 생활 습관에 따른 스트레스 민감성이나 스트레스 감내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이에 맞는 스트레스 이완 솔루션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즉, 사만다 초기모델을 구현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과제이고, 정신적 스트레스 관리를 위한 디지털 사회혁신의 주요 테마가 담긴 연구다. 물론, 스트레스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겠지만, 스트레스가 잘 관리되는 사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의학, ICT, AI 융합으로 우리 일상에서 곧 사만다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재욱 한국한의학연구원 디지털임상연구부장 jaeukkim@kiom.re.kr
-
김영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