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뒤편의 북소리'로 중단편 대상을 수상한 이신주 작가는 자신이 구축한 작품 세계에서 치열하게 무언가를 캐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 작업이 무척이나 저돌적이어서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게 한다.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에 이어 문윤성 SF문학상에서 작품 네 편을 본심에 올려놓더니 결국 대상을 받아버린 그는 곧 문학계에 무슨 큰일을 저지를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이미 저질렀다고 봐야 할까.
-수상소감
▲전화가 온다고 들었다. 근데 9시가 넘어도 연락이 없어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자기 전에 메일을 열었는데 대상이라고 하더라. 어떤 생각이 든다기보다는 후련했다. 혼자 상상을 너무 많이 해서 제풀에 지쳐 있었다.
징검돌이다. 강을 건너려면 여러 번 징검돌이 필요하다. 강은 차안과 피안이 보인다. 근데 글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곳에 서 있다. 근데 전혀 앞이 안 보인다. 맞는 방향도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도장이 찍어주기 전까지는 쓸모없는 일일 수 있다. 어쩌면 필요 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많다. 근데 징검돌을 딛다 보니 땅이 나오더라.
-작품 소개를 해 달라
▲인간이 멸망하고 남은 폐허에 한 쌍의 외계인이 나타나서 인간 사회가 왜 멸망했는지 추측한다. 1950년대에 나온 드라마 보면 '지구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지구였다' 이런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이건 클리셰가 됐다. 그래서 여러 개를 묶어서 비틀었다.
글이 재밌어 보이는 방향이 있으면 그쪽으로 가는 편이다. 중간 중간 외계인 시선으로 인간 문명 규칙을 비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그때 추가하는 문장이 많다. 재미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어떻게 집필했나
▲도서관에 가서 쓰려고 하는데, 어쨌든 가서 앉아있으면 쓰게 된다. 아무래도 집에서 쓰면 안 쓰게 된다.
한글 파일 켜면 시간 보내게 된다. 글을 습관으로 만들려고 한다. 횟수가 중요하다. 하루에 몇 번 글에 대해 생각했는지, 하루에 몇 번 글을 썼는지.
뭔가 표현하고 싶다. 신념은 아니다. 프로파간다는 싫다. 굉장히 반어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재미, 극한에 몰린 인간을 바라보는 흥미. 우리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이거다, 싶으면 남들에게 확인받고 싶은 것 같다.
-글에 대한 생각
▲초등학교 6학년 때 사귄 친구가 자기 취미는 소설 쓰기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벽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때까지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고, 쓰는 사람은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깨진 것이다.
고등학교 때 맨 앞에 앉았는데, 칠판을 보며 분필 이야기를 구상했다. 분필 일인칭 동화 느낌으로 쓰고 싶었는데, 인간과 다른 분필만의 생각을 다뤄보자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나 공간 같은 인간적 개념을 제외하고 분필만의 생각을 쓰려고 노력했다. 이 글이 고2때 강원 해오름 문학제에서 고등부 대상을 받았다. 이때 글쓰기의 즐거움 두 개를 알았다. 계획대로 이야기를 흐르게 만드는 일이 재밌더라. 또 내가 원하는 부분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주목을 해주더라. 내 방법이 먹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국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는데 글쓰기 수업이 생각보다 적어서 소모임을 만들고 합평을 했다. 작년 9월까지 5년 동안 진행했는데, 처음에는 남의 글을 보며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많이 배우게 됐다. 남의 글을 비평하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쓴 글의 단점은 잘 안 보인다. 단순히 글의 테크닉이 아니라 글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법을 배웠다.
나중에는 아예 글이 낫다 어떻다 말을 안 하게 됐다. 글이란 정답이 하나가 아니더라. 처음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논박의 형식을 썼다. 상대를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납득시키는 게 목표가 된다. A가 B다. 그게 아니라 'A가 B라고 믿는 사람들은 바보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작가다.
글과 영상은 다르다. 우주선 추락을 묘사한다고 해보자. 글로는 오래 걸리고 힘들다. 영상은 5초면 가능하다. 글은 인간이 볼 수 없는 부분을 묘사하는 걸 잘한다. 필립 K. 딕의 작품에 이런 게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기억이 편집되는 것. 그래서 그런 쪽을 파고들려고 한다. 오감을 자극하려고 한다.
-영향 받은 글, 작가는
▲필립 K. 딕 작품이 내 평소 지론과 맞았다. 영상 매체가 절대 못하는 것을 하더라. 아서 클라크 단편집 보면서 재치 있는 단편은 이런 식으로 쓰는구나 싶었다. 재담에 의해 진행되는 이야기가 많더라. 내가 쓰고 싶은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향후 계획
▲전업을 노리고 있다고 하기에는 치열하게 불타오르거나 확고한 계획은 없다. 그렇다고 취업을 노리고 있지도 않다. 일단 두고 봐야겠다. 징검돌부터 좀 알아봐야겠다.
지금까지는 글을 무작위로 조합해서 썼다. 포털에서 랜덤 단어 생성기로 단어를 무작위로 조합해서 연결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 7년 동안 이렇게 쓰다 보니 점점 잘 안 된다.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적으로 글의 시작을 만들어보고 싶다.
중단편 대상 '내 뒤편의 북소리'
이신주 작가
-1996년생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과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
최호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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