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설립된 한국IBM이 이달 55주년을 맞는다.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 원조인 한국IBM은 국내 최초 컴퓨터 '시스템 1401' 공급을 비롯해 첨단 정보기술(IT) 인프라 도입과 인력 양성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 정보화를 뒷받침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외국계 기업으로 선호했던 곳이 한국IBM이었다.
플랫폼 기업이 성장하고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클라우드 중심으로 재편되며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IBM은 여전히 IT 강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분야별 경쟁사가 늘면서 인지도나 영향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평가다. 성장 정체에 대한 고민도 커졌다.
최근 몇 년간 IBM이 변화를 추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원성식 한국IBM 대표는 4년간 IBM은 오랜 역사 속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 한국IBM 역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달라진 전략으로 새롭게 시장을 공략을 채비를 마쳤다.
원성식 대표를 만나 글로벌과 한국IBM의 변화, 향후 국내 시장 대응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김원배 전자신문 ICT융합부 부장
-IBM이 최근 몇 년간 변화를 추진한 배경은 무엇인가.
▲IBM은 1990년대 이전에는 메인프레임, 1990년대에는 인터넷 기반 e비즈니스 솔루션, 2000년대에는 스마트 플래닛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해왔다. 경쟁사에서 대체 솔루션이 나오는 등 성장에 대한 도전에 직면했을 때는 루 거스너 회장의 혁신이 있었다. 몸집이 큰 회사가 이처럼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지속 성장을 해온 것은 좋은 사례다.
하지만 2010년을 정점으로 성장이 정체됐다. 특히 세상이 클라우드 중심으로 달라지면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중심으로 한 돌파구가 필요했다. IBM이 변화를 추진한 이유다. 이는 글로벌뿐만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주요 변화 내용은 무엇인가.
▲지난 4년은 비즈니스 방향 전환을 위한 정비작업을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IBM은 지난해 말까지 제품 포트폴리오, 내부 조직 구조, 시장 진출 전략 모델, 브랜딩 등에서 다양한 변화를 감행했다. 이제 새로운 조직을 갖추고 새로운 프로세스와 전략을 실행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성장이 이뤄질 전망이다.
여전히 메인프레임이 IBM의 주요 비즈니스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데 그렇지 않다. IBM 비즈니스 70% 이상은 소프트웨어(SW)와 서비스다. 그 중심에 하이브리드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이 있다.
-변화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IBM은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이 1조달러(약 122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시장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레드햇 오픈시프트를 중심으로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AI 솔루션과 컨설팅 부문에 좀더 집중할 수 있도록 킨드릴을 완전 분사했다.
또 고객이 IBM 클라우드뿐만 아니라 아마존웹서비스(AWS), MS 등 클라우드에서도 IBM AI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IBM 매출 70%가 고부가가치 비즈니스인 SW와 컨설팅에서 나오고 있다.
IBM은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집중도와 민첩성을 높였다. 시장진출모델(GTM)을 단순화해 회사 전체에서 의사 결정이 보다 쉽고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파트너 생태계를 크게 확장했다. 시스템통합(SI), 독립 SW벤더(ISV), 채널 파트너와 개발자로 구성된 파트너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큰 공을 들였다.
-경쟁사와 차별화되는 IBM 클라우드 사업 전략은 무엇인가.
▲클라우드 이용이 늘어날수록 포인트 솔루션이 늘어나고 데이터 보안 이슈가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각 클라우드 제공사마다 경쟁력이나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멀티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각 클라우드 제공사(CSP)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만 집중한다. IBM은 SW를 통해 IBM뿐만 아니라 모든 클라우드에 대한 통제권과 주도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고객은 기존 IT 인프라와 잘 연동되면서 한번 개발하면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도록 벤더에 종속되지 않는 솔루션을 원한다. IBM 서비스와 솔루션은 이러한 고객 요구 조건을 맞추는 동시에 복잡한 엔터프라이즈 클라우드 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 지식과 고객의 데이터센터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솔루션이라는 경쟁 우위를 갖추고 있다.
-IBM의 양자컴퓨팅 관련 연구는 어디까지 와 있는가.
▲IBM은 2017년 IBM 퀀텀 네트워크를 통해 상업용 범용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최초로 선보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프리미엄 양자시스템인 127큐비트 양자시스템을 IBM 퀀텀 네트워크 회원에게 제공하고 있다. 128 퀀텀 볼륨을 제공하는 65큐비트 실험용 시스템과 64 퀀텀 볼륨을 제공하는 27큐비트 실험용 시스템도 함께 제공한다.
IBM은 오픈소스 방식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개발자, 과학자, 교육자 및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글로벌 커뮤니티를 확장하는 것이 과학과 비즈니스를 위한 양자컴퓨팅 발전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2016년 세계 기업 중 최초로 양자컴퓨팅을 클라우드에 도입하고, 오픈소스 퀀텀 SW 개발 플랫폼 퀴스킷(Qiskit)을 선보였다. 퀴스킷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용되는 퀀텀 SW 개발 플랫폼이다.
-지난해 말 연세대와 퀀텀 컴퓨팅 센터 설립을 위해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센터 설립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센터가 설립되면 한국은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IBM 퀀텀 시스템 원 양자컴퓨터가 설치된 IBM 양자컴퓨팅 데이터센터를 보유하는 국가가 된다.
협력 관계에 따라 연세대와 IBM은 양자컴퓨팅에 대한 학술 연구, 양자컴퓨팅 활용을 위한 SW 개발, 산업 내 필요한 양자컴퓨팅 자원 제공 등 양자 컴퓨팅 연구를 위해 협력할 계획이다.
연세대는 국내 산학연을 연결하는 IBM 퀀텀 허브로서 기업, 대학, 연구소, 의료 기관, 스타트업, 정부 기관 등 양자컴퓨팅 연구에 관심을 가진 국내 선도 조직과 협업을 위한 양자컴퓨팅 생태계 조성을 위해 힘쓸 예정이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 의료 네트워크와 연구 인력을 보유한 연세대는 IBM과 협업을 통해 양자컴퓨팅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분야 연구, 교육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 시장에서 달라진 IBM의 사업 전략을 소개해 달라.
▲한국IBM은 '엔터프라이즈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콘셉트로 디지털 혁신을 도모하는 기업고객을 공략하고 있다. 기업의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서는 모든 기업이 고유한 특성과 비즈니스, 프로세스 등을 다각도로 고려한 기업용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엔터프라이즈 디지털 플랫폼은 애플리케이션, 데이터 및 AI, 통합 클라우드 관리, 보안 등 네 가지 핵심 플랫폼으로 구성된다.
기업 클라우드와 전통적 IT 환경에 대한 이해와 뛰어난 가시성을 바탕으로 통합 관리, 모니터링과 정책 적용 기능을 제공하고 전사 관점에서 비용 최적화, 실시간 감지와 사고 대응 자동화 등 클라우드 기반 IT 환경에서 개방성, 지능화 및 자동화를 지원한다.
-올해 이후 한국IBM 대표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IBM은 에코시스템을 확장하고 파트너와 관계를 강화해 공동 비즈니스 성장을 도모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전략적 축으로 삼았다. 국내에서도 파트너 역량과 관계 강화 지원, ISV 같은 신규 파트너 확장 등 에코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이는 한국IBM이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는데 중요한 기반이 될 전망이다.
다른 하나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국내 양자컴퓨팅에 대한 담론을 주도해 정부, 대기업, 스타트업, 연구 기관 등이 참여하는 양자 생태계를 함께 만들고 키워가는 것이다.
대부분 선진국 정부와 선도적 글로벌 기업은 양자 기술에 대한 우위를 가져가기 위한 연구와 투자를 시작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해 성균관대, KAIST, 연세대 등 주요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국내 양자 생태계를 확장함으로써 양자컴퓨팅 연구와 투자, 교육 등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IBM의 지난해 성과는 어떠한가.
▲IBM은 지난해 매출 574억달러, 영업이익 128억달러를 달성했다.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비즈니스는 19% 성장, 현재 IBM 전체 수익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연간 수익 70% 이상이 SW와 컨설팅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IBM의 클라우드 비즈니스는 성공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내 실적은 분기별, 사업부별로 밝히긴 어렵다. 그러나 국내 역시 본사와 마찬가지로 클라우드를 통한 비즈니스 혁신을 지원할 수 있는 엔터프라이즈 디지털 플랫폼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국내의 많은 기업과 협력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롯데카드, 롯데 홈쇼핑, 조폐공사, 두산, 아프리카TV등 다양한 산업 고객의 애플리케이션, 데이터 AI, 통합관리, 보안 영역에서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두산 디지털 이노베이션은 향후 5년간 글로벌 보안 관제 센터 운영과 보안 컨설팅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한국IBM을 선정했다.
한국IBM은 IBM 엑스퍼트 랩 서비스를 통해 KB국민은행의 마이데이터 서비스 플랫폼을 활용한 '머니크루' 서비스를 개발 지원했다. KB국민은행 애자일팀이 클라우드, 데이터 및 AI 등 첨단 디지털 기술과 애자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애자일 개발 방법론을 코칭했다.
-향후 계획이나 포부를 말해달라.
▲IBM이 미국 기업이라는 점에서 한국IBM은 도전 사항도 많다. 하지만 한국IBM은 국내 기업 고객에게 친화적이다. 고객이 필요한 것을 커스터마이징하고 개발해 운영·관리하며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한국IBM 임직원이 현장에서 밤을 새워가며 국내 산업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내 산업이 발전하는데 지속 기여하는 것 그리고 한국IBM이 지금보다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정리=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원성식 한국IBM 대표는
연세대 기계공학과에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한국IBM에 입사한 이후 시스템 엔지니어 및 산업 솔루션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기술 영업부, 마케팅 및 전략 부서, 디지털 사업부, 금융산업본부, IT서비스 사업부에서 리더를 역임했다. 2010년 말부터 SK텔레콤에서 근무하며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사업 본부장으로 신사업 구축과 성장 선도에 기여했다. 2015년 한국IBM에 복귀해 시스템즈 하드웨어 비즈니스 총괄 전무와 엔터프라이즈 및 커머셜 부문 총괄 부사장, 테크놀러지 세일즈 그룹 대표를 맡았다. 지난해 7월 한국IBM 대표에 선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