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 분야에도 메타버스 접목이 확산되고 있다.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확장현실(XR) 기반 의료 메타버스 솔루션이 의료진 교육부터 수술 내비게이션 도구로 활용되며 패러다임 변화를 이끈다. 환자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메타버스 내에 가상의 디지털 트윈을 생성해 약물 치료 효과를 확인하거나 최적 수술 방법을 결정하는 '메디컬 트윈' 기술도 활발히 개발된다.
6일 온·오프라인으로 열린 '전자신문 헬스온(ON)'에서는 최근 의료계에서도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의료 메타버스'와 '메디컬 트윈' 기술 동향과 '메타버스 병원' 구축 노하우를 얻기 위한 관심이 쏟아졌다.
◇“메타버스가 의료 질서 바꿀 것”
지난 1월 출범한 '의료메타버스 연구회' 초대 회장인 박철기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의학교육, 로봇수술, 외래진료, 각종 검사와 치료 분야, 환자 교육 분야에 메타버스 기술이 접목됐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미래 변화를 상세한 사례를 통해 소개했다.
박 교수는 “AR, VR,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블록체인, 비대면진료, 빅데이터 등 새로운 요소기술의 융합을 전제로 현실세계와는 다른 새로운 레이어 안에서 사람들과 연결되고 소통이 가능해야한다”면서 “여기에 더해 이런 움직임이 현실과 동기화 되어 맞물려서 돌아가는 것이 의료 메타버스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의학교육 분야에서는 해부학 실습을 대체할 수 있는 확장현실(MR) 의학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향후 메타버스 안에서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자료를 놓고 소통하는 메타버스 의학교육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는 수술장 내에서 콘솔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이뤄지는 로봇수술도 원격수술을 지나 2~3명 수술자가 동시에 접속해 소통하며 수술하는 메타버스 수술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자기공명영상(MRI)을 기반으로 장기와 병변의 위치를 확인하면서 수술 정확도를 높이는 영상유도수술도 '증강현실 보조수술'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여러 사람이 헤드셋을 착용하고 서로 다른 시각에서 소통하며 수술하는 '메타버스 보조수술'까지 발전할 수 있다.
외래 진료나 협진도 메타버스 공간에서 다양한 진료과 의사와 환자, 보호자가 모이는 '메타버스 진료'로 구현될 수 있다.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ADHD), 공황장애, 치매, 중독, 수면장애, 외상후증후군(PTSD)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에도 메타버스 기술이 접목되면 환자 맞춤형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고 몰입도도 더 증가시킬 수 있다. 디지털 가상현실을 통한 통증·재활 치료도 많이 시도되고 있다. 여기에 메타버스가 접목되면 치료 영역을 확대하고 복합적 통증 관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박 교수는 “의료 메타버스는 그 자체가 데이터 혁신으로 현재의 의료전달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의료질서가 도래할 수 있다”면서 “진정한 미래 메타버스 의료를 구현하려면 여러 기반 기술이 발전해야 하며 환자에 대한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메디컬 체어'나 '메디컬 박스' 같은 특화 디바이스도 개발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몰입감 높이고 수술 정확도 높이는 메디컬 트윈”
서울대병원 1호 벤처기업인 메디컬아이피는 인공지능(AI)을 통해 다양한 의료 영상을 '메디컬 트윈'(의료 분야 디지털 트윈)화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 메타버스 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해부학 구조물을 AR·VR·XR 기술로 확장해 의과대학에 교육용 메타버스 커리큘럼을 구현했다. 또 수술 부위에 환자의 인체 장기와 병변을 구현해 수술 시 내비게이션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의료 증강현실 플랫폼을 실제 의료 현장에 도입하기도 했다. 실제 의료영상을 토대로 해부실습용 사체(카데바)를 대체할 수 있는 가상현실 아나토미 테이블도 상용화했다.
박상준 메디컬아이피 대표는 “XR 해부학 교육을 통해 카데바 실습에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실제보다 흥미롭고 몰입할 수 있어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반응을 얻었다”면서 “실제 환자 수술에 XR 기술을 적용하면 절개를 최소화하고 최단 거리 내에 계획적으로 수술을 진행할 수 있고 경험 많은 선생님들의 술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수요도 있는데 가상현실 기술이 큰 기회를 준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박 대표는 의료 메타버스가 △모바일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환자용 열람 도구' △각종 질환에 따른 콘텐츠를 통해 임상적 특징을 효율적으로 습득하는 '시뮬레이션 도구' △환자의 상태 확인, 수술·치료법 선택, 부서간 의사소통 도구가 되는 '실임상 활용도구' △환자컨설팅, 학생 교육, 술기 교육에 사용하는 '교육용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의료 메타버스 기술은 임상 인력 부족을 해소하고 교육에 도움을 주면서 지리적 제한을 극복하고 환자와 보호자가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이런 서비스가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규제와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고 개인정보보호와 보안 문제를 해결해야하며 임상의와 환자들의 수용성 제고, 실제 현실 세계와 형평성 등에 대해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도전 과제도 있다. 의료 분야는 높은 정밀도를 요하기 때문에 실제 어지럽지 않고 딜레이 없이 현실감 있게 몰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인체 구조물의 물성을 실제와 동일하게 만들고 실제와 같은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햅틱 기술 분야도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메타버스 병원, '콘텐츠'가 핵심”
최근 많은 병원이 관심 갖고 있는 메타버스 가상병원 구축과 운영 실제 사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됐다. 이병철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림대의료원이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에 개원한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과 또 다른 메타버스 플랫폼인 '디토랜드' 기반의 '한림 유니버스' 운영 사례를 소개했다.
한림대의료원이 지난해 12월 오픈한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은 메인광장, 대강당, 상담실, 클래스룸, 전시관, 플레이룸 등 공간을 갖추고 산재되어있는 화상 관련 정보와 콘텐츠를 집약적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화상환자와 보호자간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사회복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100일동안 성과도 상당하다. 메타버스 병원이 '소통의 장' 역할을 하며서 코로나 환자 증가로 무산될 상황에 놓였던 의료원 50주년 개원기념식을 전 교직원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할 수 있었다. 메타버스를 통한 화상 의료 서비스 제공 모델도 확립했다. 미술치료 프로그램은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에서 가장 인기있고 잘 활용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19로 단절됐던 사회공헌할동을 진행하는 등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활동도 가능하다.
이 교수는 “메타버스 병원 구축 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콘텐츠”라며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의 경우 화상예방에서부터 치료, 관리, 사회복지 서비스 상담 및 병원 의뢰까지 메타버스 공간에서 사용자가 단계별로 화상에 대한 전문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한림유니버스는 어린이화상병원과는 또 다른 방식의 메타버스 세계관이다. 교직원들의 소통과 화합, 한림의 역사와 향후 증축될 신관 등을 반영한 한림의 미래 모습을 메타버스로 구현했다. 올해 상반기 의료원과 대학, 유관기관 전 교직원이 참여하는 한림 유니버스 메타버스 페스티벌을 개최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메타버스라는 사회적 관심에 비해 실제 사용하는 참여자들에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는 점과 현재 기존 메타버스 플랫폼은 각 플랫폼마다 제공하는 환경과 기능이 다르고 활용하는 방식이 실제 운영하고자 하는 운용방식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한계”라며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지속적으로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획과 콘텐츠가 필요한데 패션분야의 경우 대체불가능토큰(NFT)이 빠르게 메타버스에 적용되고 있지만 의료분야에서는 제도권 내에서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 제공할 수 있을지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한림대의료원은 메타버스 어린이화상병원과 한림 유니버스 운영 노하우를 기반으로 가상세계에서 빅데이터, AR, VR 등 스마트병원 시스템과 시뮬레이션센터를 기반으로 한 원격협진, 교육, 헬스케어서비스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향후에는 전 세계에서 메타버스 분원을 통해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는 글로벌 메타버스 플랫폼도 구축할 계획이다.
정현정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