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테크 기업과 카드사 등에 지급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는 게 은행들의 예금 이자 상승으로 이어져 금융 소비자의 이익에 긍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이용자 자금을 예금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도 함께 제기됐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2일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이 금융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보완 과제' 보고서를 통해 “전자금융거래법을 개정해 지급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면 은행의 예대마진이 축소돼 금융소비자의 후생에 기여한다”고 주장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디지털금융의 기본법으로 중요성이 크지만 2006년 제정된 이래 특별한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핀테크, 빅테크 출연 등 중대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금법 개정안의 핵심 사항은 지급서비스를 빅테크 등 기술기업과 카드사 등 비은행 금융회사에 개방하는 것이다. 지급서비스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서비스로 현금 입출금, 급여 이체, 국내외송금, 대금결제, 공과급 납부 등을 포괄한다. 빅테크 기업이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인가를 받으면 은행처럼 계좌를 발급해 모든 지급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지급서비스사업자는 방대한 고객정보를 축적할 수 있고, 상당한 자금을 유치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황 연구위원은 “빅테크 등 종지사의 지급서비스 계좌와 은행의 수시입출금식 예금이 경쟁하면 은행의 예금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 연구위원이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 19개 은행의 2010~2020년 분기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결제성 예금이 1% 감소하면 예금 금리는 2분기 동안 0.29%포인트(P) 상승했다. 반면 대출 금리 상승은 은행 간 경쟁으로 인해 상승 폭이 제한적이었다. 결제성 예금이 1% 감소한 후 1년 간 대출금리 상승 폭은 0.17%P로 예금 금리 상승 폭을 하회했다.
문제는 전금법 개정안이 이용자 자금을 예금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용자 자금의 50~100%를 고유재산과 분리해 별도 예치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이용자가 충분히 보호되지 않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별도 관리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업자가 파산 후 이용자 자금을 상환하지 않았다.
황 연구위원은 보증보험 가입 의무, 안전자산 투자 의무 역시 이용자 보호 수단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종지사 계좌가 예금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이자를 받는 것도 금지되므로 이용자에게 불리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예금자 보호 방식으로 사업자가 대리인으로 이용자 자금을 이용자 명의로 은행에 예금하고 예금보험료는 은행이 부담하는 '중개형 예금 예치 방식'을 제안했다. 황 연구위원은 “종지사는 이용자 자금을 수취하지만 이를 재원으로 대출할 수 없어 은행으로 보기 어렵다”며 “대출 관련 신용위험이 사실상 없으므로 은행 수준의 건전성 규제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