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공공계약제도 개선을 위해 산업별 의견을 수렴했다. 소프트웨어(SW) 기업들은 매년 실시하는 형식적 행위가 아니라 실질적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차제에 공공SW 분야의 낡은 제도를 고쳐서 산업을 활성화하는 한편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가 회원사로부터 받은 의견에는 입찰 하한가를 높여 달라는 요구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입찰 하한가는 지난 2014년 60%에서 80%로 20% 상향된 후 8년째 유지되고 있다. 물가상승,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등으로 어려움이 커졌는데도 여전히 출혈경쟁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SW 기업들의 주장이다.
공공계약제도 개선 여부는 기재부 결정에 달렸다. 2년 전 계약제도 혁신TF에서 입찰 하한가의 상향 문제가 논의됐지만 하한가가 60%인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SW 기업들은 고급 인력이 다수인 SW 분야를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기재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관건이다.
SW 기업들은 입찰 하한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차등점수제 활성화도 요구했다. 차등점수제는 기술점수 순위에 따라 3점 이내로 차등점수를 두는 제도다. 가격 후려치기를 통한 순위 뒤집기를 막고 기술 위주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도입됐다.
2020년 말 기재부가 협상에 의한 계약 체결 기준(계약예규)을 개정하며 시행됐다. 조달청은 지난해 7월 협상에 의한 계약 제안서평가 세부 기준을 개정해서 차등점수 폭을 3점 이내로 구체화했다. 이후 몇몇 사업에서 차등점수제를 적용했지만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적용하지 않는 곳도 많았다. 제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먼저 얼마나 많은 사업에 적용하는지 비율을 집계할 필요가 있다.
차등점수제 적용 사업 비율, 적용 사업에서 총사업비 대비 낙찰가율 등을 집계해서 공개해야 한다. 제도가 출혈경쟁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면 확산을 장려하고, 그렇지 않다면 차등 폭을 넓히거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공동이행방식 폐지의 필요성도 거론됐다. 책임을 연대해서 지는 것은 현대판 연좌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책임 소재를 놓고 갈등과 소송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만큼 반드시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스템통합(SI) 사업에서는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제도 폐지나 개선에 앞서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리는 방법부터 논의돼야 한다.
상용SW 유지관리요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행정안전부가 '행정기관 및 공공기관 정보시스템 구축 운영지침'(고시)을 개정해서 예산 산정 시 유지관리요율을 명기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변화가 조금씩 일고 있다. 그러나 SW 기업은 예산을 담당하는 기재부가 나서야 문제의 근본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얼마 전 안도걸 기재부 차관이 5년간 공공구매 사업 예산을 확대하고 2023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SW 제품별 요율 상향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히는 등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SW는 4차 산업혁명 기반이자 디지털 대전환의 핵심 요소다. 공공SW 분야의 낡은 제도 개선은 SW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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