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제적으로 약속한 목표인 '탄소중립'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25일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 시행된 후 차기 정부 또한 탄소중립 기조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이다. 탄소중립 레이스에 동참하는 것은 정부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작년부터 대기업 중심으로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넘어 2030년을 탄소중립 목표로 선언한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이제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금융기관도 예외는 아니다. 은행과 증권사 중심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범위가 사뭇 다르다. 기업 자체의 탄소중립 외 보유 금융자산에 대한 탄소중립까지 추진한다. 기업의 탄소배출은 직접배출원(Scope1)과 간접배출원(Scope2·3)으로 구성된다. 간접배출원 가운데 '3영역'(Scope3)의 경우 기업 경영활동을 통해 직접 배출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책임과 영향을 고려해 관리하도록 국제사회가 권고하고 있다. 주로 임직원 출퇴근 시의 탄소배출량, 공급망으로부터의 탄소배출량 등이 해당된다. 배출량 산정·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탄소중립 추진이 쉽지 않다. 그러나 금융기관에는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투자자들이 석탄발전과 같은 좌초자산에 대한 투자 손실을 줄이기 위해 금융기관에 금융자산의 탄소중립 추진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탄소 기업 대출 비중 축소 및 재생에너지 등 녹색활동 투자 확대를 통해 기후리스크를 관리하라는 것이다.
금융기관 금융자산에 대한 탄소중립을 추진하게 되면 기업의 탄소중립을 촉진시키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금융의 힘으로 녹색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어 국제사회 역시 금융자산 탄소중립 추진에 대한 금융기관의 리더십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금융기관 마음대로 탄소배출량 산정과 관리를 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그린워싱 방지를 위해 국제사회와 투자자는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공신력 있는 방법론을 요구한다. 금융기관이 국제표준(PCAF, SBTi)을 준용하는 이유다. 아직 한계는 있다. 국제표준이 아직 금융자산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방법론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전체 금융자산 가운데 67% 이상(자산군마다 상이)만 탄소중립 대상에 포함되면 준용하는 것으로 인정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금융자산 가운데 대기업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과 달리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기관은 목표 달성이 만만치 않다. 대기업들은 2050 탄소중립 선언, 탄소규제(탄소배출권거래제,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이행을 위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탄소중립,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다 보니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등 탄소중립 전환을 기대하기 어렵다.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의 금융자산에 대한 탄소중립 추진이 어려운 이유이다. 비상장 정책금융기관이 아니라 상장 금융기관이라면 금융자산에 대한 탄소중립 추진을 외면할 수도 없다. 혹자는 고탄소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중단하면 된다고 쉽게 말하지만 중소기업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탄소중립 전환을 도와야 하는 지원 대상이다. 탄소중립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금융 우산을 빼앗는 건 공정한 탄소중립 전환정책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측정부터 제대로 돼야 관리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데이터 파악 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만 한다. 물론 어렵다고 물러설 일은 아니다.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혁신금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금융자산에 대한 탄소중립 추진은 아직 국제표준과 금융기관 모두 걸음마 단계다. 중요한 것은 금융자산 탄소중립의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 적극적인 기업의 탄소중립 전환 지원 방안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금융기관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이다.
유인식 IBK기업은행 ESG경영팀장 yuinsik@ib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