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연동제' 또 무산 위기…인수위, 시장 자율로 선회

중소기업계의 숙원인 납품단가 연동제가 다시 무산될 상황에 처했다. 중기업계가 원부자재 가격 변화를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제도 도입을 새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표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애초 당선인 공약과 달리 유보 입장을 취해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공정위가 최근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정부가 가격 설정에 개입하면 수급사업자(납품업체) 보호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크다고 전했다. 특히 원사업자(납품받는 대기업)의 사업 여건을 악화시키고 수급사업자의 원가 절감을 위한 기술과 경영 혁신 유인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 대신 공정위는 납품단가 조정협의제 활성화를 통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이 이뤄지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모범계약서 도입 △모범기업 인센티브 제공 △납품단가 신고센터 운영 △대행협상 제도 완화 검토 등을 내세웠다.

이는 인수위가 지난달 19일 발표한 납품단가 조정 활성화 방안과 맥을 함께하는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검토'를 공약했다. 인수위는 그러나 모범계약서 도입 등 시장 자율에 우선 맡기겠다면서 한발 물러섰다.

중기업계는 협상력 부족 등으로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원자재 가격 급등분을 반영하지 못해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 윤 당선인도 후보 시절 중기업계 제안을 받아 납품단가 연동제를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 중기업계는 번번이 제도화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납품단가 연동제 입법화가 추진됐으나 공정위의 반대로 무산되고, 대신 납품단가 조정협의제가 도입됐다. 이후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제도 도입이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주무 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한무경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 따르면 중기부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중소기업 납품대금 보장'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납품단가 연동제 의무화는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중기부는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납품단가가 조정되는 관행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 단체장들이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중소기업중앙회 제공)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 단체장들이 지난달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중소기업중앙회 제공)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