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유류세율을 추가 인하하는 등 물가 잡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경유 가격은 여전히 불안정해 물가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국제적으로 경유 재고가 바닥나면서 가격 상승 추세가 계속됨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경유와 휘발유 가격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9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936.9원, 경유 가격은 1927.47원을 기록 중이다.
최저가 기준 경유 가격은 1800원으로 휘발유(1797원)보다 높게 형성된 상황이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과 역전되기도 했다.
유류세 추가 인하 직전인 지난달 30일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75원, 경유는 1920원이었다. 휘발유 가격은 유류세율 인하로 하락했지만 경유는 오히려 오른 셈이다. 당초 정부는 유류세 추가 인하로 휘발유는 리터당 83원, 경유는 리터당 58원의 가격 하락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재부 관계자는 “해외의 경우 경유와 휘발유의 가격이 비슷하게 형성되는데 국내는 경유가 산업용으로 쓰이는 점을 고려해 세금으로 차등을 뒀던 것”이라며 “경유에 붙는 세금이 원래도 휘발유 대비 낮았던 점, 해외에서도 경유 가격이 상승세인 점 등이 작용해 휘발유와 경유 가격 역전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유와 휘발유 가격 역전은 당분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유류세율 추가 인하를 반영한 주유소는 정유사의 직영 주유소들이다. 자영주유소들은 기존 공급분을 소진한 뒤 기름값을 낮출 계획이어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지연되는 점을 고려하면 2주 가량은 경유가 휘발유 가격보다 높게 책정된 주유소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경유 가격이 국제적으로 상승세인 점도 유류세율 인하를 상쇄시키는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경유는 휘발유보다 가격 탄력성이 낮다. 농업, 제조업, 물류업 등 산업 전반에서 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구매 수요는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경유는 특히 휘발유보다도 러시아산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러시아산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유럽에서 수급불균형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CNN 등에 따르면 경유와 난방유 등의 재고는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생산량은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유사들의 생산 방식 전환이 기존에 쓰이던 석유 관련 생산량을 감소시켰다.
정부도 경유 가격의 불안정한 흐름을 알지만 뚜렷한 방안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가격 상승인 만큼 고유가로 부담이 커진 사업자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최선인 수준이다. 실제로 앞서 정부는 유류세율을 인하하는 것과 함께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화물차 44만5000대를 포함해 경유를 사용하는 운송사업자가 대상이며 경유가격이 기준가격(리터당 1850원) 이상 상승 시 초과분의 50%를 정부가 부담한다.
경유 가격의 불확실성은 4%대로 고공행진 중인 물가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때문에 경유 가격 상승은 소비자에게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서비스 물가는 3월에 이어 4월에도 전년 대비 6.6% 상승했으며 개인서비스 물가도 상승 흐름세를 보이고 있다.
강민주 ING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정부는 그 동안 공공요금 추가 인상을 억제해왔는데 전 세계 에너지가격이 연초 이후 치솟으면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며 “물가 체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공공요금에 재차 오르고, 내년에도 공공요금 인상이 계속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2% 목표치를 상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