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Don't Panic, 타월 데이!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Don't Panic, 타월 데이!

5월 25일은 매년 찾아오는 타월 데이다. 코믹 SF 드라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팬들은 애덤스 사망 2주 후인 5월 25일을 기려 타월 데이를 제정했다. 어느 날 '지구'를 폭파해서 일어난 인류 대탈출로 말미암아 '은하수 나그네'라는 '농담'이 시작된다.

오랜 옛날 한 초우주적 존재가 '생명과 우주 및 만물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기 위해 딥소트(Deep Thought)라는 거대한 컴퓨터를 만들었다. 딥소트는 750만년에 걸친 계산을 완료했다. 애타게 '답'을 기다려 온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딥소트는 연산 결과를 발표했다, 정답은 바로 '42'였다. 사람들은 대혼돈에 빠졌다. '컴퓨터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은 어차피 숫자나 문자일 뿐'이란 풍자다. 불만이 커지자 딥소트는 단언했다, “나는 모든 오류를 체크했고, 나의 모든 계산은 완벽했다. 정답은 42다.” “그런데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정답은 그렇다 치고 대체 그 '질문'이 뭐였는지 너희가 알고는 있었니?” 아, 그렇다. 문제를 모르고 답을 알 수는 없다. '질문'이 '답'보다 중요하다. 다시 '생명과 우주 및 만물에 대한 그 근원적 질문'이 무엇인지를 계산할 강력한 슈퍼컴을 만들었다. 그 슈퍼컴의 이름은 다름아닌 '지구'였다. 하지만 '지구'의 1000만년에 걸친 계산 완료 5분 전에 허무하게도 은하수에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던 보론족이 고속도로 건설에 방해가 된다며 '지구'를 폭파했다. '지구' 대탈출로 은하수 여행이 시작됐다. 하지만 패닉에 빠지지 말라(Don't Panic). 항상 타월과 함께 하라(Carry Your Towel). 인공지능? 42? 어차피 컴퓨터의 출력물은 숫자와 문자뿐이다.

'바둑봇' 알파고의 조상뻘인 '체스봇'은 1985년에 수 박사가 개발했다. 애덤스의 코믹 SF에서 영감을 얻어 최초의 체스봇 이름을 '딥소트'로 지었다. 알파고의 승리로 유명해진 딥러닝(Deep Learning)이란 이름은 1986년 리나 데치터가 처음 사용했다. 딥소트를 인수한 IBM은 딥블루(Deep Blue)로 개명하고 10년 후인 1997년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격파, 전 세계가 경악했다. 다시 10년 후인 2006년 제프리 힌턴은 꺼져 가던 딥러닝을 부활시켰고, 또 10년 후인 2016년 3월엔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이세돌 9단을 4대1로 꺾으며 충격을 안겼다. 신들린 듯 제4국에서 승리한 이세돌은 인간과 기계의 '바둑 전쟁'에서 '인류 최후의 승자'가 됐다.

작가의 상상력은 시대를 앞서 간다. 영감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세대를 넘나드는 활력을 준다. 애덤스에게 딥소트의 'Deep'은 딥소트의 정답 42처럼 'Deep'보다 'Too Deep'에 가깝다. '너무 깊은' 1000만년의 고뇌는 때로 깊지 않은 직관만 못하다. 단순한 타월이야말로 우주 나그네에겐 더없이 현명한 '도구'다. 스탠리 큐브릭의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공포의 컴퓨터 할(HAL)을 멈추게 한 도구도 가장 단순한 드라이버였다. 타월은 “차디찬 재글런베타 위성에서 몸을 따뜻하게 감싸 주고, 카크라푼 사막의 붉은 별빛 아래 잠들게 하는 이불이고, 적의 공격을 막아 내거나 1대1 타월 결투를 벌일 수도 있고, 독가스 행성에서 방독면으로 얼굴을 감싸고, 위기 시 SOS 신호로 휘날리고, 트랄 행성의 끔찍한 괴물 버그블라터가 노려볼 때는 내 눈을 가려서 괴물도 나를 볼 수 없게(?) 보호한다.” 쫄지 말고 타월. Don't Panic and Carry Your Towel. 영감은 때로 진지한 구도자의 모습으로, 때로 한가한 농담의 모습으로 변신환생을 거듭하며 은하수의 별처럼 흩어진 사람들을 이어 준다.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릴 수 있는 사진은 몇 장일까? 시도해 보자. 42장까지다. 어차피 무한정일 수는 없고, 개발자 누군가가 이럴 때 참 합리적인 42로 농담처럼 정했으리라. 주변에서 42를 찾아보자. 외계인의 은밀한 신호인지도 모른다. 참, 국제 타월 데이의 한국본부는 2016년 컴퓨터를 즐기는 익살스런 의사들인 정보의학 모임이 결성했다. 다음 수요일엔 'Don't Panic'이 쓰인 타월과 티셔츠 바람에 거리를 활보해 보자.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