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구입한 미국 마우스 제품 포장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포장에 제품 보호를 위해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해서도 아니다. 포장지 밑부분에 탄소발자국 마크를 보고 놀란 것이다. 미국 마우스 제조사는 유명 기업도 아닌데 '8kg․CO2,e'라고 확실하게 탄소발자국을 수치로 표시했다.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뉴욕증시에 상장된 기업 대상으로 탄소배출량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규제안을 마련했다. 특히 기업의 모든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정보 '스코프3'도 의무공시 대상에 제한적이지만 포함했다.
미국과 유럽은 한국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낸다고 한다. 국내 기업들은 '탄소 공급망'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우선 제조 '탄소공급망'을 이해해야 한다. 기존 제품 중심의 공급망과 병행해 탄소 중심의 공급망이 구축된다고 하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제조 분야에서 원·부자재→부품→완성품으로 이어지는 최종 완제품 물류 공급망이 있다면 원·부자재 생산, 부품 생산, 완성품 생산 등 과정에서 발생된 탄소 총량이 최종 완제품 탄소발자국으로 표시되는 '탄소공급망'이 있다.
미국에서 스코프3를 일부 채택함으로써 '탄소공급망'은 영향력을 크게 받게 될 것이다. 스코프3 탄소배출량은 협력사, 물류 등 탄소배출량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완제품에 원·부자재 생산 협력기업과 부품생산 협력기업 탄소배출량도 완제품 기업의 탄소배출 몫으로 산정한다. 완제품 입장에서 '탄소공급망' 관리가 매우 중요해진 셈이다. 따라서 국제적 탄소공급망 경쟁시대가 열린다. 현재 제품·물류 중심 공급망과 더불어 탄소공급망이 수출 경제 위주인 우리나라 제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국제 탄소공급망은 탄소국경세 등도 연계돼 새로운 탄소경제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제조, 에너지, 환경, 물류, 고용, 교육 등 경제 전반적으로 탄소가 중심이 되는 탄소 경제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탄소 경제시대의 탄소공급망은 기존 제품 생산 원가 중심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 중심의 경쟁시대로 전환됨을 뜻한다. 세계는 제조경쟁력을 위해 개발도상국에 앞다퉈 생산 거점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하면 탄소 감축·관리가 어려워져서 제조 경쟁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인건비가 싸고 고용인력이 풍부하다고 해서 생산 거점을 해외로 옮긴 경영 전략이 오히려 탄소 발생 증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 완성품 탄소배출량이 많아져서 국제 탄소공급망 편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이제 한국도 경제·산업구조를 고도화해야 하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다. 우리나라는 수출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국제 탄소공급망 선도를 위한 산업 구조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일부 대기업은 ESG 대응을 하고 있지만 탄소중립 핵심인 스코프1, 스코프2, 스코프3 등 대응력은 매우 부족하다. 특히 스코프3에 대해 협력기업과의 관계에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형 탄소공급망(K-Net Zero) 구축을 위해 대기업 중심의 대중상생 탄소공급망을 우선 구축하고 대기업이 상생기금을 과감하게 기부해야 한다.
협력기업들도 정부·대기업에만 기대지 말고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만 한국형 탄소공급망이 완성될 것이다. 정부는 탄소절감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인센티브 지원 없이 중견·중소기업의 탄소 절감 실행을 끌어내기는 어렵다.
반월·시화산단과 같이 다양한 산업군이 활동하면서 중견·중소기업이 밀접한 지역 중심으로 한국형 탄소중립 공급망 모델을 시범 추진하면 좀 더 빨리 가는 방법일 수 있다. 국제 탄소공급망 중심의 새로운 경쟁시대는 이미 우리 발밑에까지 와 있다. 한국 탄소공급망 완성으로 세계 탄소경제를 한국 기업이 선도해야 한다.
현동훈 한국공학대 탄소중립혁신센터장 hdh@tu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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