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속도가 과학 속도를 앞서는 게 상식이 된 세상이다. 과학 문제를 먼저 정치가 의사결정하고 후속 조치를 과학이 하는 행태다. 과학계가 스스로 사회문제를 도출하고 이를 자발적이며 선제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정치와 사회 필요에 따라 정해지는 문제에 과학이 대응하고 있다. 어쩌면 장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실 정치가 주도하는 성과나 시책은 추격형 연구개발(R&D) 수행에서나 가능하고 단순·단기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 속도로는 중장기 과학적 난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과학 난제에 과감히 도전하고 세계 최초와 최고에 도전하려면, 정치와 과학이 같은 속도로 조화를 이루는 동조화(coupling)가 필요하다. 즉 정치의 일방적 판단이나 진행보다는 민·관 태스크포스(TF)와 같은 과학과 정치 협의 채널을 통해 이를 해소하는 게 절실한 시기다.
지질자원 연구기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기술혁신이 이뤄지는 환경에서 더 많은 자원이 필요했고 그로 인한 지질자원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런 산업 고도화는 정치 속도가 지질자원 속도를 더욱 공고히 지배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유럽으로 수출하는 자국의 천연가스 자원을 정치 무기화하고 있다. 결국 자원 문제는 독립적인 자원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닌, 단지 정치의 영역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달성을 위해 1960년대 태백산지구 자원조사 탐사 개발을 수행한 바 있다. 당시 지질자원 분야의 자발적 기술개발 수요와 자원개발 역량을 고려해 상향식으로 시작된 게 아닌 경제개발이라는 정치·경제적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하향식 조치였다. 물론 이를 통해 단기간에 지질자원 분야 기술발전과 인프라 확충 및 인력양성이라는 부수적 수혜를 누리기도 했다.
지금은 탄소중립 적자이자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료인 리튬, 니켈 등 희소금속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고 신자원민족주의 대두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가 추진한 해외자원개발은 적폐로 간주해 R&D는 물론 관련 기업이 위축되는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정치 성향에 따라 이전 정부 핵심과제가 그다음 정부에서는 적폐로 매도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질재해 등 원인 규명 과정에서도 전문가 집단지성에 의한 논리적인 결론 도출보다는 지역 이익을 중심으로 일부 비과학적 행정 행위가 지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과학 속도가 정치 속도와 대등해지기를 바란다. 우량주식을 장기 보유하듯이, 과학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줘야 한다. 특히 지질자원은 빵 공장에서 바로바로 찍어내는 빵이 아니다. 장기간 조사·탐사를 하고 유망광구가 발견되면 시추와 성분분석 과정을 거쳐 타당성이 입증돼도 환경 문제 해소와 인허가 획득 등 약 10년 기간이 소요된다. 정치의 속도는 현재 관점이지만 지질자원 속도는 10년 이후 미래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물론 지질자원 기술혁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은 그 기간을 단축할 수도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중점 추진하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인공지능(AI)을 융합한 무인화·자동화 스마트 마이닝 기술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른 시일 내 이런 기술이 적용된다면 안전한 광물생산시스템 구축과 동시에 희소금속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는 과학, 즉 지질자원 속도가 정치의 그것을 앞서길 기대한다. 지금까지는 찾아서 채굴하는 자원이었지만 미래는 사용하고 재활용하는 자원이 실현될 것이다. 인조 다이아몬드와 같은 희소금속을 만들어 사용하는 지구모방 기술이 주도하는 기술혁신사회가 도래하려면 모두가 실패를 예상하는 과학 난제에 누구나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연구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과학의 속도가 정치를 앞설 그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바란다.
김성용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ksy@kiga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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