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방문했을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어 연설이 화제였다. 유창한 단어 구사와 네이티브 스피커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발음이 듣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연설에 대해 '적재적소에 적합한 어휘로 고급스럽게 표현하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평도 나왔다. 짧은 연설 도중에 한·미 정상회담을 맞아 반도체 사업에서 한국과 미국의 우정을 존중함을 먼저 언급하고, 고생한 삼성 직원들의 공까지 챙기는 마음 씀씀이에서 '과연 글로벌 기업 총수는 다르구나'라는 공감대를 끌어냈다.
이 부회장이 한국·미국 대통령을 앞에 두고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자연스럽게 연설한 것을 삐딱하게 폄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엘리트 교육을 받은 인재라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 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동영상 아래에 끝도 없이 달린 '찬양일색'의 코멘트는 보기에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연설에서 행사로 넘어가 보면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먼저 삼성을, 이 부회장을 만나러 왔다는 점은 국가 경제에서 이 부회장의 필요성이 방증된 사례라 할 수 있다.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을 승리로 이끌 파트너로 삼성전자를 선택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 부회장의 확답을 듣기 위해 직접 찾아왔다. 이 부회장은 미국과의 경제동맹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화답했고, 불과 사흘 후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의중을 담아 앞으로 5년 동안 총 450조원을 반도체 등 신산업에 쏟아붓겠다는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이런 대규모 중장기 투자계획은 전문경영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삼성전자 통신장비 사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2020년 버라이즌과의 7조9000억원 규모 5G 장기계약, 2021년 NTT 도코모와의 통신장비 계약 당시에도 이 부회장은 직접 통신사 CEO와 직접 만나 협상을 진척시켰다. 이달 미국 제4 이동통신 업체인 디시 네트워크의 5G 이동통신 장비 공급사로 선정된 것도 이 부회장과 찰스 어건 디시 회장이 직접 만나 함께 오랜 시간 산행을 하며 사실상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인 빈 자이드 나하얀 할리파 아부다비 왕세제 등 리더들과도 각별한 사이다. UAE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5G, 반도체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협력이 기대된다. 지난해에는 미국을 방문해 누바르 아페얀 모더나 공동 설립자 겸 이사회 의장,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순다르 피차이 알파벳 CEO 등과 '미래' 접점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재판과 관련해 '취업제한' 상황이지만 이처럼 삼성에 필요한 다양한 요구에 응하며 일하고 있다. 하지만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시장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 부회장의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된다. 삼성의 투자와 성과를 가시화하려면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더 강화돼야 한다. 이 부회장 같은 고급인력을 언제까지 '사법족쇄'로 묶어서 뛸 수 없도록 놔둘 수 없다.
이 부회장이 매주 재판을 받는 것과 세계를 누비며 경영활동을 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국가 경제에 이익인지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이 부회장이 제약 없이 전면에 나서야 삼성의 450조원 투자계획도 원활하게 진행되고, 미래 시계가 불투명하다는 시장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다. 이 부회장을 지금처럼 붙잡아 두는 것은 대한민국 경제의 손해이자 글로벌 경제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급인력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