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세계관으로 록인(Lock-In) 하라

[ET단상]세계관으로 록인(Lock-In) 하라

얼마 전 디즈니 자회사 마블 스튜디오 시리즈 신작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닥터스트레인지2)가 개봉했다. 마블 시리즈에 속한 영화는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기대감이 높았고, 닥터스트레인지2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줄거리 전개에서 영화는 불친절하게도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 및 언행 변화 등에 대한 개연성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디즈니가 자사 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플랫폼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해당 인물에 대한 별도의 시리즈물을 방영, 작품 속 등장인물 관계나 행동에 대한 개연성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즉 관객이 영화를 완전히 이해하려면 디즈니 세계관 내 다른 콘텐츠를 우선 시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 영화-영화로 이어지던 스토리 전개가 영화-OTT 시리즈물-영화라는 새로운 브리지 구도로 제시된 사례다.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의문 없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OTT를 통해 디즈니가 구축한 콘텐츠 세계관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눈을 돌려 디즈니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정보기술(IT) 회사 '애플'을 보자. 아이폰으로 시작하는 애플 유저는 이어폰(에어팟), 태블릿(아이패드), 시계(애플워치) 등 관련 제품에 점점 빠져들며 '아이폰이 없었다면?'이라는 비가역성 가득한 생각마저 하게 된다.

하지만 애플 유저를 애플 제품으로 묶는 것은 하드웨어(HD)가 아니다. iOS라는 소프트웨어(SW)가 구성한 강력한 세계관 속에서 편리함과 만족감을 느낀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로열티를 갖게 된 것이다.

디즈니와 애플의 사례는 브랜드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브랜드 로열티 실현을 위한 접근 방법 자체가 바뀌고 있다. 과거의 로열티가 제품과 서비스의 장점을 바탕으로 축적된 브랜드만의 헤리티지를 유지하며 충성도를 높이는 것이라면 지금부터는 혁신적인 제품과 그것을 아우를 수 있는 SW를 바탕으로 구축한 '브랜드만의 세계관'으로 고객을 끌어당겨야 한다. 그리고 세계관에 한번 입성한 고객은 이보다 앞서 애플의 고객이 느낀 '비가역성'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록인(lock-in)돼야 한다. 그때 브랜드를 향한 진정한 고객의 로열티가 생성된다.

여러 브랜드에 불어닥친 세계관 열풍은 뷰티 브랜드도 예외는 아니다. 많은 브랜드가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내놓고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오늘도 우리 앞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브랜드 이미지와 제품 효능을 알려주는 여러 매혹적인 광고 앞에 소비자의 지갑은 흔들리곤 했다. 하지만 시대 흐름과 함께 이제 소수의 코스메틱 제품만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시기는 지났다. 제품력과 혜택을 강조하는 마케팅도 좋지만 수많은 콘텐츠와 브랜드가 쏟아지는 시대에 소비자의 기억은 단편적으로 이어질 뿐 연속적인 헤리티지가 생성되기 어렵다.

이제는 나이 들기 싫어하는, 미모를 뽐내고 싶어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통합적인 뷰티 솔루션이 제시돼야 한다. 당장의 제품 판매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혁신적인 제품을 바탕으로 인간의 근본적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생활 습관 정보, 피부 관리 방안 등을 직접 제공 가능한 '버티컬 플랫폼'으로 더 깊숙이 빠져들어야(deep dive) 한다. 그것이 바로 뷰티 브랜드가 구축해야 할 '고객을 사로잡을' 세계관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소비자는 더욱 현명해졌다. 특히 온라인 세계에 익숙해졌다. 단순한 제품·광고로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만의 통합된 세계관으로 고객을 록인했을 때 강력한 브랜드 로열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 victor@apr-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