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연구소에서 시작하는 디지털 혁신

디지털전환이 기업의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가상환경에서 제품 개발, 스마트 팩토리, 물류 자동화 등 디지털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연구 분야의 디지털전환은 다른 영역에 비해 더딘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기업은 연구 분야에 투자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최근 한 국내 식품기업은 높은 당도를 내면서도 칼로리는 설탕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알룰로오스의 상용화에 성공했다. 또한 정밀한 공정의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 기업이 화학물질을 연구하고 석유화학 분야의 모 기업은 생산 단가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촉매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이 연구 분야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제조 기업의 진정한 혁신은 연구소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현재 R&D 연구소 업무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연구 데이터가 문서로 저장되고, 이로 인해 사일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연구소에서는 가설 수립, 실험, 샘플 및 실험장비의 리소스 관리, 연구 후 보고서 제출 등 프로세스가 반복적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파일 기반의 데이터는 연구 과정과 성과를 축적하고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실제로 담당자만이 찾을 수 있는, 심지어는 담당자도 찾지 못하는 '다크 데이터'(Dark Data)가 전체 연구 데이터의 80~90%에 이른다고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메일 기반 협업과 분산된 IT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연구와 실험은 수많은 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관리 부서, 환경과 안전을 책임지는 품질 부서, 생산 부서, 협력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업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기업은 잘 정의된 IT 시스템의 지원 없이 이메일 위주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자료와 정보 공유를 위해 추가적 데이터 가공 및 처리 작업이 필요할 수 있고, 협업 부서와 진행 상황 공유 및 확인도 쉽지 않다. 특히 규모가 비교적 큰 연구소는 다양한 시스템을 사용하는 데 시스템 간 중복 기능, 연동 이슈로 인해 수작업과 데이터 오류가 증가할 공산이 높다.

이와 같은 문제점은 세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첫째 디지털화 및 데이터 기반 연구를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가능한 한 많은 연구 과정과 결과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디지털 데이터는 추후 연구에 재사용될 수 있다. 또한 연구 성과 분석 자동화를 통해 불필요한 수작업을 줄임으로써 빠른 판단과 의사결정으로 자연스럽게 생산성이 증대될 수 있다.

둘째 실제 실험과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융합해서 연구 성과와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가상 영역의 시뮬레이션과 현실 영역의 물리적 실험 데이터 및 화학 이론을 병합해서 예측 가능한 디지털 모델을 만들고, 이를 시뮬레이션하는 방법이 있다. 현실과 동일한 환경을 갖춘 가상환경에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면 더 많은 경우(Case)를 적은 비용으로 연구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분자 단위까지 가상환경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서 반도체, 화장품, 첨단소재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다양한 부서 간 협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제품을 연구하고 이를 생산하기까지 R&D, 제품 개발, 제조 부서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예를 들어 제품 개발 부서는 신제품에 대한 요구사항, 배합 정보를 공유받아야 한다. 연구팀은 실험을 위해 생산 설비 사용 여부를 알리고, 생산 스케줄 및 레시피를 공유해야 한다. 원활한 협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연속성과 연결성을 갖춘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연구 분야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은 연구뿐만 아니라 기업 혁신의 전 과정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이 비즈니스 성패를 결정할 수 있는 현시대에 연구 분야의 발전 속도는 매우 큰 경쟁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출발이라 할 수 있는 연구 분야의 디지털 혁신 역시 국내 제조 산업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다.

박성희 다쏘시스템코리아 컨설팅대표 Sunghee.PARK@3d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