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친환경 경영과 사회적 책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지 않는 벤처·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 출자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가 투자기업 발굴·심사부터 투자회수까지 전 과정에 ESG 요소를 고려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 때 대상 기업의 ESG 경영을 점검하겠다는 것으로, 벤처 업계에도 ESG가 필수로 떠오르고 있다.
1일 국회를 통해 입수한 한국벤처투자의 'ESG 벤처투자 가이드라인'에는 투자 프로세스 전 과정에 걸쳐 ESG 요소를 통합하는 방법이 담겼다.
먼저 VC는 하우스별 ESG 철학을 보여주는 ESG 정책을 도입하고 관련 조직을 꾸리도록 했다. ESG 조직은 전사적 관점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총괄조직과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실행조직, 그리고 의사결정의 효과적 실행을 위해 총괄조직과 실행조직을 연결하는 연결조직으로 구성된다.
또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투자기업 발굴·심사 단계에서 '투자배제전략(네거티브 스크리닝)'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ESG 관점에서 명백하게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산업 또는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술·담배·무기 관련 기업과 도박·성인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이 해당된다. 최근에는 화석연료 생산, 환경파괴, 인권탄압, 열악한 노동환경 등의 행위를 하는 기업도 포함되는 추세다.
아울러 ESG 실사도 이뤄지도록 제시했다. 환경(E)의 경우 피투자기업의 환경 경영목표나 친환경 혁신, 환경관리 등을 체크하고, 사회적 책임(S) 분야에선 근로자의 인권과 근로조건, 다양성, 소비자 보호 여부 등을 따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레벨1~3으로 나눠 기업 발전 단계별로 고려하도록 했다. 비즈니스 모델이 확립되지 않은 스타트업은 레벨1, 확립 단계는 레벨2, 본격적인 성장 단계는 레벨3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지배구조(G)의 경우 레벨1은 창업자의 가치와 윤리를, 레벨2는 이에 더해 내부통제 및 법률준수를, 레벨3은 이사회 등 거버넌스 조직까지 실사 영역을 확대한다.
이와 함께 투자심사위원회에선 ESG 평가보고서를 추가하거나 기존 심사보고서에 별도의 ESG 평가 항목을 넣어 투자 의사결정에 반영하도록 권고했다. 이는 ESG 평가 결과에 따라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피투자기업이 ESG 개선과제와 구체적 방안을 함께 제시하면서 ESG 개선 가능성을 설득할 수 있다면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특히 ESG 투자가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위해 표준 투자계약서에 ESG 요구사항 준수, 모니터링 의무화 등 관련 조항을 추가할 수 있다.
사후관리에도 ESG가 중요 항목으로 포함돼, VC가 피투자기업의 ESG 핵심성과지표(KPIs)를 설정하고 주기적으로 성과를 모니터링해 ESG 경영 내재화를 독려하도록 했다. 또 KPIs 달성 시 후속 투자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ESG 경영을 이끌 수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출자한 한국모태펀드 운용사다. 한국벤처투자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강제성 없는 일종의 권고 사항이나 운용 펀드 규모가 7조2775억원(지난해 말 기준)에 달하고, 우리나라 벤처투자 시장에서 마중물 역할을 해와 가이드라인은 국내 새로운 투자 기준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가이드라인은 '한국벤처투자→VC→기업'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VC 입장에선 피투자기업의 ESG 관리 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중요해졌으며, 투자를 받는 벤처와 스타트업들은 철저한 ESG 경영 계획이 필수로 보인다. 이를 준비하지 않으면 투자는 물론, 회수나 유치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산업계 전체로는 ESG 경영을 대기업 외 중기·벤처로 확산하는 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한국벤처투자는 조만간 가이드라인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벤처투자 관계자는 “적용 시기와 적용 대상, 순차 적용 여부 등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상반기 중 공고될 ESG펀드를 통해 주목적 투자 대상 등 ESG 투자 방향성이 보다 가시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ESG 벤처투자 가이드라인 주요 내용>
(출처: 한국벤처투자)
조재학기자 2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