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개의 신경세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의 뇌는 우리가 아는 한 가장 복잡한 시스템이다. 인간의 뇌는 진화를 거치면서 점점 더 복잡해졌고, 앞으로도 더 복잡하게 진화할 것이다. 뇌는 과연 어디까지 복잡해질까. 이 난해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매우 간단하다. 현문우답. 시스템은 그 복잡성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까지만 복잡해질 수 있다,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복잡성은 시스템을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스템의 '복잡화'는 복잡성을 감당하고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는 '간결화' 능력과 함께 '공진화'한다.
5월에 기념할 날은 '타월 데이'뿐만이 아니다. 40년 전인 1982년 5월 한국 최초의 인터넷이 서울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사이에 연결됐다. 필자는 운이 좋게 이 해 서울대에 입학했지만 인터넷에는 접속할 수 없었다. 그 대신 국내 최초의 전자계산학과를 설립한 숭실대 전산원의 교육과정에서 8비트 컴퓨터와 애플 베이직을 배우는 행운을 얻었다. 10년 후 신경정신과 전공의이던 1992년에야 텔넷(telnet)으로 인터넷 접속에 성공했다.
인터넷은 이름 그대로 망과 망을 연결하는 망이다. 왜 그리 복잡한 구조로 만들었을까. 핵전쟁 대비책이었다. 최초의 인터넷은 미국 국방성 방위연구소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1969년 ARPAnet이다. 핵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군사 통신망을 타격할 것이기 때문에 핵 공격에도 견뎌내는 망이 필요했다. 핵 공격으로 망이 손상돼도 목적지까지 데이터 전달이 보장돼야 했다. 이 난제를 푼 기술은 '패킷 스위칭'이다. 전송 데이터를 '패킷'이라는 작은 단위로 쪼개고, 각 패킷에는 '최종 종착점'과 '재조립 순서'만을 입력한다. 패킷은 어디로든 제각각의 경로로 최종 목적지에 각자 도착한 후 재조립·복원된다. 여러 망으로 이뤄진 복잡한 연결망인 데다 망 자체도 파손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경로를 선택할지와 같은 불확실성과 복잡성은 제거하고 오직 '최종 목적지'와 '재조립 순서'만을 입력하는 '간결화'로 인터넷은 '망중망'에 등극했다. 다행히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양한 서비스가 늘면서 인터넷은 너무 복잡해졌다. 원하는 자료를 찾아내는 쉬운 방법은 없었다. 원거리 서버에 접속하는 텔넷 외에도 아키(Archie), 고퍼(Gopher) 등 검색도구가 생겼지만 정보를 찾으려고 '산 넘고 물 건너' 방랑했다. 웹은 급증하는 복잡성을 단숨에 해결했다. 웹의 창시자 팀 버너스 리는 두 가지 '간결화 기술'로 인터넷의 모든 '정보자원'에 질서를 부여했다. 인터넷은 망의 점을 구성하는 '서버'들의 망이고, 서버가 보유한 모든 정보자원은 다 '파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서버에 일관된 주소를 부여하면 서버 내 모든 파일은 경로와 파일명으로 고유하게 식별된다. 서버의 IP 주소, 서버 내 파일의 경로, 파일명 등 이 세 가지를 이어 붙인 문자열인 URL로 인터넷 상의 모든 정보자원에 고유한 '최종주소'를 부여했다. 두 번째 간결화 기술은 '초연결'(Hyperlink)이다. HTML 문서에 원하는 정보자원의 URL을 링크로 넣자 마술처럼 모든 정보자원이 '원 클릭'으로 연결됐다. 복잡하게 엉켜 있던 정보 자원들은 갑자기 모든 점과 점이 서로 직접 연결된 한 개의 '완전그래프' '초공간'으로 '간결화'됐다. 스마트폰은 모든 사람을 이 '초공간'의 한 점으로 초대했고, 모든 정보자원과 한 번의 터치로 연결됐다. 인터넷은 40년 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지만 사람들은 훨씬 더 간결한 인터넷을 즐긴다.
팀 버너스 리는 URL을 URI로 세분화하고, RDF를 도입해서 계속 복잡해지는 인터넷의 정보자원을 좀 더 지능적·의미론적으로 연결한 '메타지능'을 구현하려 한 듯하다. 하지만 '시맨틱 웹' 운동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고, 웹은 사용성을 강화한 HTML5로 넘어갔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도 인터넷과는 약한 정도로만 연결된 채 복잡한 정보자원과 그 활용의 복잡성은 계속 늘고 있다. 새로운 간결화가 필요해진 오늘, 한국 인터넷 개통 40주년을 축하한다.
서울대 의대 정보의학 교수·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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