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패배는 정당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정당의 존재 목적은 권력을 잡는 데 있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세 번 연속 선거에서 패했다면 해당 정당은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해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런데 요즘 더불어민주당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환골탈태는커녕 서로 '네 탓' 투쟁에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런 민주당의 네 탓 투쟁은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과거 자신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도 자신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과거 정권 탓으로 돌리는 모습을 종종 보여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네 탓 투쟁에서 민주당 내 강경 세력 혹은 팬덤 영향력이 가세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국민의힘도 강경 세력에 의해 휘둘린 적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거친 이후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시절 당시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강경 세력에 의해 당이 휘둘린 적이 있었다. 강경 세력에 휘둘리면 해당 정당은 중도층의 지지를 받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 등으로 당명을 바꿨어도 7대 지방선거, 21대 총선에서 연이은 참패를 맛봐야 했다. 2018년 7대 지방선거의 경우 참패의 다른 원인이 있기는 했다. 지방선거 직전에 개최된 싱가포르 회담이 이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은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충격 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측면 외에도 자유한국당이 강경 세력에 휘둘렸다는 측면도 선거 결과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강성 이미지가 특정 정당을 휘감을 경우 중도 유권자뿐만 아니라 기존 지지층도 해당 정당을 외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 사례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주 투표율을 들 수 있다. 37.7%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선거에서 광주 지역은 전국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지역에서 보궐 선거 평균 투표율과 유사한 투표율이 나왔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다. 우리는 투표를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식으로 배워 왔다. 반드시 투표는 해야 하는 존재로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일부 남미 국가처럼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에게 벌금을 부과하자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은 것도 이런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과 사고는 민주주의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투표하지 않는 것도 분명한 정치적 의견의 표현 방식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광주 시민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바로 이러한 정치적 의견 표현 방식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도 싫지만 강경 세력에 끌려다니는 민주당도 싫다는 의견을 낮은 투표율로 표현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여전히 강경 세력에 대한 눈치를 보고 있다.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과거에는 강경 세력의 목소리가 비교적 단일했다. 그런데 요즘 민주당의 강경 세력은 둘로 나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선명성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강경 세력의 활보와 이원화 현상은 결국 지방선거 직후라고 할 수 있는 8월에 전당대회를 치른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지 못한 측은 2024 총선에서 완전히 밀려 도태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재명 의원의 경우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계파가 당권을 잡는 데 실패하면 대권 재수는 물 건너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같은 절박감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완패함으로써 이재명 의원의 정치력과 득표력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여기다가 당내에 새로운 대선 주자까지 등장했으니 이재명 의원 측의 절박감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새로운 대권주자란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인을 말한다.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자는 민주당 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엘리트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고, 정통 관료 출신에다 인생 스토리까지 있다. 게다가 중도 이미지도 겸비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당선자가 이런 인물이기에 이재명 의원 측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양측은 피를 말리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싸움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패한 쪽은 정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예상할 수 있는 근거는 과거 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친이계가 당권을 잡으면 친박에 대한 공천학살이 자행됐고, 친박이 당권을 잡았을 때는 친이계에 대한 공천 배제가 있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뒤따르는 현상이 있다. 공천에서 배제된 측이 '밖으로' 나가서 새살림을 꾸린다는 점이다. '친박연대'나 '무소속 친박연대'가 바로 그런 사례다.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내분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싸움에서 패한 측도 다른 살림을 차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만일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면 야권발 정계 개편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 우리 정치권의 분당 사태로는 '바른정당'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새누리당 내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문제에 대한 책임론 공방이 거셌다. 그 결과 바른정당이 생겨났는데 마치 이번에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두고 친문과 친명이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분당과 관련해 주목할 또 다른 부분은 분당에 의한 정계 개편은 언제나 야당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당을 장악하고 있어 갈등이 표면화되기 쉽지 않고, 설령 표면화된다 하더라도 '끝까지 가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민주당 사태가 분당으로 이어질지 양측이 극적인 봉합에 합의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만일 분당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극단적 여소야대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해야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율 명지대 교수 yulsh@mju.ac.kr
◇필자 소개
신율 교수는 1987년 고려대를 졸업했다. 막스 베버, 에드문트 후설, 마르틴 하이데거가 공부하고 교수로 지낸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통일연구원을 거쳐 1995년 9월부터 현재까지 명지대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국제정치학과 부회장 등을 지냈다. KBS 생방송 심야토론 MC,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 MC, YTN '신율의 시사탕탕' MC 등 다양한 언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