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일종의 습관이다. 화를 내면 순식간에 뇌에 피가 쏠린다. 혈류량은 무려 6초 만에 절정에 달한다. 분노는 상대방이 반응할 때까지 끊임없이 끓어오기 때문에 한 번 올라간 혈압이 떨어지기도 어렵다. 분노로 인해 올라간 뇌의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대략 1시간은 걸리므로 분노는 결코 뇌 건강에 좋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화를 내는 사람에게 화를 참아보라 해도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뇌에 분노하는 버릇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분노가 습관이 된 사람은 화를 냄으로써 의식을 각성시키고 자신이 분노한 상황을 이해하려 한다.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 공통된 특징은 수면 부족이다. 그래서 분노하는 버릇을 고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평소보다 30분 일찍 자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특히 12시 전에 자는 것이 효과적이다. 잠자는 시간 동안 감정이 가라앉아 분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이 직접적으로 화나 슬픔과 같은 감정을 희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대체 잠이 어떻게 우리 안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걸까?
◇수면 부족이 분노와 슬픔 등 부정적 감정 증폭
우선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팀은 실제로 수면 부족이 분노를 부채질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학생 202명을 대상으로 한 달간 수면·스트레스 요인·분노 상태에 대한 기록과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평소보다 잠이 부족하면 다음 날 화가 나는 상황을 겪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다음으로 147명의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평소 수면 스케줄을 유지하거나 평소보다 약 5시간 수면 시간을 줄이는 조건 중 하나에 배정돼 이틀 후 실험실에서 자극성 소음에 노출되는 동안 느끼는 분노의 강도를 진술했다. 그러자 충분히 수면을 취한 사람은 소음에 순응해 분노가 덜하지만, 수면이 부족한 사람은 소음에 반응해 분노가 높아지고 증폭됐다. 연구팀은 이 조사 결과가 실제로 수면 부족이 분노나 슬픔과 같은 감정적 반응 능력에 손상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뇌는 렘수면을 통해 장기기억을 저장
스위스, 이탈리아 공동 연구팀은 렘수면(REM) 동안 일어나는 감정 처리 과정을 이해하고자 했다. 수면은 크게 렘수면과 비렘수면(NREM)으로 나뉜다. 렘수면은 몸은 잠들었지만 뇌는 깨어있는 '얕은 잠'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꿈을 꾸며 실제 세상을 보듯 안구를 빠르게 움직인다. 이러한 이유로 렘수면은 급속 안구운동 수면이라 불리기도 한다.
반면 '깊은 잠'인 비렘수면은 몸과 뇌가 모두 잠 빠져 호흡과 심박수가 감소한 상태다. 전체 수면 시간 중 우리는 렘수면과 비렘수면을 번갈아 경험하는데 그 비율은 약 1:4이다. 뇌는 렘수면 중에 낮에 수집한 단기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한다. 우리는 일상 속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한 후 그와 관련한 기억을 대뇌 피질에 임시로 저장해 두는데 렘수면 중 이러한 단기 기억을 전문 기억 기관인 '해마'까지 운반하여 장기기억으로 바꾼다. 렘수면 중 우리는 피로를 회복하고 사회적 관계를 정리하며 그날의 기억 중 감정적인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통합한다.
렘수면 동안 부정적 감정 신호 차단
연구팀은 렘수면 동안 감정적 기억이 통합되는 과정을 밝히고자 쥐를 대상으로 뇌세포 활동을 측정했다. 쥐가 안전과 관련된 자극 또는 위험과 관련된 자극에 노출되도록 실험을 설계한 후 렘수면 동안에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기록했다. 그 결과 렘수면 동안 감정 신호가 뇌 신경세포에서 다른 신경세포로 전달되지 못하고 차단되는 현상을 발견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의 신호를 차단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우리 뇌는 기억할 내용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따라 처리하는 장소가 다르다. 긍정적인 기억은 해마가 처리하고 부정적인 기억은 편도체에서 처리한다. 이 같은 구조 덕분에 공포와 같은 부정적 감정은 쉽게 잊어버리고 긍정적인 기억만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 뇌 신경세포는 크게 신경세포의 몸통인 '세포체', 다른 신경세포에서 온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상돌기', 그리고 다른 신경세포에 신호를 보내는 '축색돌기'의 세 부위로 나뉘는데, 렘수면 동안에는 신경세포의 수상돌기가 받아들인 신호를 세포체 단계에서 차단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폐기한다.
우리 뇌가 이렇게 진화한 이유는 뇌의 용량 부족 때문이다. 뇌에 집중적으로 입력되는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장기기억으로 변환하기에는 뇌의 용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서 버려야 할 정보와 기억해야 할 정보를 구분하고 후자만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해야 한다. 렘수면은 신체의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뇌의 활동을 그대로 유지해 신체는 휴식을 취하고 뇌는 활동적으로 낮 동안 얻은 단기 기억 중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긍정적인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넘기는 적응적 진화의 산실이다. 그래서 잠이 부족하면 편도체보다 해마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우울하고 부정적인 기억이 오래 남게 되고, 분노와 슬픔과 같은 감정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렘수면에 빠진 상태, 꿈을 꾸는 시간 속에서 우리 뇌는 행복한 기억을 남기고 슬픈 기억을 지운다. 다음 날 좀 더 행복한 하루를 맞이하고 싶다면 충분히 잠을 자자. 그리고 아픈 기억은 잊어버리자.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