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혈관신생 조절하는 '수문장' 단백질 발견...암·혈관질환 치료 활용 기대

혈관신생 과정에서 첨단세포 활성화를 조절하는 Merlin의 수문장 역할.
혈관신생 과정에서 첨단세포 활성화를 조절하는 Merlin의 수문장 역할.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고규영 혈관 연구단 단장(KAIST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과 배정현 박사후연구원팀이 혈관 세포에 존재하는 멀린(Merlin)이라는 단백질이 혈관신생을 억제해 조절하는 핵심 물질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고 13일 발표했다.

혈관신생은 기존 성숙한 혈관으로부터 새로운 혈관이 발아해 생성되는 과정이다. 태아 성장과 상처의 치유 등에 필수 현상이다. 이 현상이 지나치거나 부족하면 망가진 혈관이 발달하면서 암, 황반변성, 허혈성 심장병, 혈관성 치매 등 질병 원인이 된다.

혈관신생 촉진, 억제 조절인자 연구와 이를 통한 질병 치료제 개발이 진행 중이다. 촉진 조절인자 연구는 많이 이뤄졌지만, 억제 과정 규명은 이번 연구가 최초다.

혈관신생 시 혈관 주변에서 분비되는 혈관내피세포 성장인자(VEGF)와 이 물질이 결합하는 VEGF 수용체(VEGFR)가 혈관 첨단 세포를 활성화해 혈관신생을 촉진한다.

VEGF 자극을 통해 혈관내피세포 중 특정 세포가 사상위족(손바닥 모양의 형태 말초 신경돌기)을 형성하면서 첨단 세포로 분화하고, 첨단 세포 주변세포는 대세포로 분화, 세포증식을 통해 혈관 내강을 만든다. 이후 세포와 세포 접합 연결 단백질인 'VE-캐드헤린(Cadherin)'에 의해 혈관내피세포가 안정화되면서 혈관생성분화 과정을 마치게 된다.

연구팀은 생쥐 혈관에서 특이적으로 멀린 발현을 억제한 실험군을 만들었으며, 실험군 망막 혈관 변화를 관찰한 결과 사상위족을 가진 첨단 세포가 대조군과 비교해 증가하나 혈관 몸통을 이루는 대세포는 줄어드는 것을 확인했다.

멀린이 세포막에 있는 VEGF 수용체와 결합해 VEGF 수용체 세포 내 이동에 따른 첨단세포 활성화를 억제하는 것을 밝혔으며, 더 나아가 멀린이 혈관신생 과정에서 VE-캐드헤린 밀도의 높고 낮음에 따라 VEGF 수용체 세포 내 이동을 조절하는 수문장 역할을 해 특정 혈관내피세포가 첨단 세포로 분화 유도되는 기작을 규명했다.

VE-캐드헤린 밀도가 높은 혈관내피세포에서는 멀린, VEGF 수용체와 VE-캐드헤린이 서로 결합함으로써 VEGF 수용체 세포 내 이동을 억제하지만, 반대로 VE-캐드헤린 밀도가 낮을 경우 첨단세포 성장유도 촉진을 확인했다.

생쥐 종양모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멀린이 종양 혈관에서 제거됐을 때 첨단 세포 수는 증가하고 대세포 수는 줄어들었다. 혈중 산소 감소로 종양 성장이 현저히 줄었다.

이는 멀린이 오히려 종양 성장을 촉진하는 결과다. 지금까지 종양억제자로 알려진 것과 달리 멀린의 차별화된 역할이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멀린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열었다.

배정현 박사는 “멀린이 VEGF 수용체와 결합해 혈관신생을 촉진하기 보다는 억제한다는 사실을 실험동물과 배양된 신생혈관에서 확인했다”며 “멀린이 혈관신생을 촉진하는 생리물질들과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고규영 단장은 “그동안 혈관신생을 촉진하는 생리활성 물질을 찾는 연구에 초점이 맞추어졌는데, 이번 발견을 통해 혈관신생을 억제하는 물질을 새롭게 발견했다”며 “혈관신생의 항상성은 혈관신생 활성물질들과 멀린과 같은 제어물질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균형이 유지되지만, 이 균형이 깨질 경우 여러 혈관질환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번 연구 결과가 암, 황반변성 등의 질환뿐만 아니라 아직 병인이 밝혀지지 않은 여러 혈관질환에 대하여 멀린을 표적하는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열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벤스(IF 14.136) 온라인판에 11일 게재됐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