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 규모와 이용자 증대로 말미암아 예금과 같이 가상자산을 원하는 주소가 아니라 다른 주소로 보내는 이른바 착오송금 문제가 빈번히 발생한다. 특히 가상자산 주소가 이해하기 어려운 긴 문자·숫자 조합열로 돼 있고, 국내가 아닌 외국 거래소 등으로의 전송도 적지 않아서 가상자산의 착오송금이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는 데는 예금보다 더 복잡하고 심각하다.
이와 관련해서 필자가 관여한 최근 가상자산의 착오송금과 관련한 중요한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대법원 2021년 12월 16일 선고 2020도9789 판결은 가상자산 착오송금에 대해 반환하지 않은 피고인에 대해 배임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다시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가상자산 착오송금에 대해 이를 반환하지 않더라도 형사적으로 처벌이 어렵다는 내용이다.
가상자산을 착오송금한 경우 전송받은 사람이 임의로 돌려준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민사적으로 부당이득 반환청구도 있고 형사적으로는 횡령죄 고소, 배임죄 고소 등이 있다.
우선 횡령죄 성부를 보면 횡령죄(형법 제355조 제1항)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 성립한다. 형법은 타인의 재물을 신임관계에 따라 보관하는 자에게 이를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하는 행위를 금지하도록 규율하고 있다.
가상자산의 경우 문제되는 것은 재물성이다. 결론적으로 가상자산을 재물로 보기는 어렵다. 비록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가상자산 자체를 재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횡령죄로 의율하기는 어렵다. 이런 취지로 원심 역시 피고인에 대해 횡령죄 적용을 하지 않고 배임죄를 적용한 것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은 예금의 착오송금 경우에는 달리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 대법원은 금전 특성을 고려해 예금계좌에 송금된 금원을 '재물'로 보고, 착오로 예금계좌에 송금된 금원은 송금인과 수취인 사이에 별도의 거래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수취인에게 그 금원을 보관해야 할 신임관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따라서 예금계좌에 착오로 송금된 금원을 임의로 소비하면 횡령죄가 성립한다.(대법원 2006년 10월 12일 선고 2006도3929 판결 등)
배임죄 성부를 보면 원심은 예금의 착오송금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유추해서 피고인에게 “돈을 이체 받은 계좌명의인은 송금의뢰인에 대해 송금 받은 돈을 반환할 의무가 있어 계좌명의인에게 송금의뢰인을 위해 송금 받거나 이체된 돈을 보관하는 지위가 인정된다”는 이유로 배임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배임죄를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환송했다. 이유로는 첫째 가상자산 착오송금의 경우 피고인이 부당이득반환의무라는 민사상 채무를 부담하는 것이고, 이러한 사정만으로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사람이 신임관계에 기초해서 가상자산을 보존하거나 관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 둘째 대법원은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 이익대립관계를 넘어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해서 타인의 재산을 보호하거나 관리하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에(대법원 2020년 2월 20일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등) 피고인과 같이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경우에도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신임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셋째 가상자산은 보관됐던 전자지갑의 주소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주소를 사용하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고, 거래 내역이 분산 기록돼 있어 다른 계좌로 보낼 때 당사자 이외의 다른 사람이 참여해야 하는 등 일반적인 자산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법정 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형법 적용 시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넷째 가상자산 착오송금의 경우 피고인을 형사처벌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예금의 착오송금에 대해 횡령죄를 인정한 판례를 유추해서 신의칙을 근거로 피고인을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보았다.
민사상 책임과 형사상 책임은 별개이기 때문에 대법원 2021년 12월 16일 선고 2020도9789 판결은 가상자산과 법정화폐 차이를 전제로 신임관계를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기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를 반영하고 죄형법정주의 정신을 투영한 결과로, 타당한 결론이라 생각한다. 다만 전송 받은 가상자산에 대한 민사상 부당이득 반환의무 등은 인정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가상자산 투자와 기술 활용이 일반화하면서 가상자산으로 말미암은 분쟁이 계속 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제도화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뒷짐을 지고 있다가 급기야 최근 루나 사태와 같은 대형 분쟁까지 발생하는 것을 묵과한 측면이 있다. 이제라도 가상자산 당사자 간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 oalmephaga@minwh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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