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 사흘 만에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4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이번 전쟁의 교훈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쟁은 아무리 약한 상대라 해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제공권이 확보되지 않으면 전쟁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없다는 것, 운용하는 무기보다 군인들의 전투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번 전쟁에서 특이한 것은 러시아군이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첨단 전자전 장비, 전자, 장갑차 등을 그대로 버리고 후퇴해서 우크라이나군이 이것으로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실례로 러시아군은 적의 지휘통제소나 전투기가 임무 수행을 하지 못하도록 전파 방해, 위치 탐지에 사용되는 첨단 전자전 장비인 크라수하(Krasukha)-4를 그대로 남겨둔 채 후퇴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 장비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동일한 성능의 전차를 100대씩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전쟁을 할 경우 전력을 비교하면 1대 1이다. 만일 어느 한쪽의 전차가 50대 파괴되었다면 전력은 100대 50으로 2배 차이가 난다.
그런데 50대가 운영 가능한 상태로 적의 수중에 넘어간다면 150대 50으로 금세 3배의 전력 차이가 난다. 이렇게 되면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부득이 무기를 남겨둔 채 후퇴해야 할 상황이면 철저히 파괴해서 적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군은 북한과 전선을 직접 맞대고 있고, 언제 기습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혹시 적이 우리 군의 무기를 탈취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게 해야 한다. 하드웨어로 작동되는 무기는 물리적인 파괴 외에 다른 방법이 없겠지만 소프트웨어(SW)가 내장되어 운용되는 무기는 제로화(Zeroize·작동불능) 기능을 활용한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다.
실례로 F-16 전투기는 개별 장비에 입력된 전자 정보를 삭제하거나 전자 정보는 물론 아예 전투기가 작동되지 않도록 핵심 SW인 비행운용 프로그램(OFP; Operational Flight Program)을 삭제하는 제로화 기능이 있다. 이는 일반 컴퓨터의 포맷 기능과 같은 것이다.
조종사는 개별 장비의 제로화 스위치를 작동해서 내장된 전자 정보를 삭제할 수 있고, 마스터 제로화(Master Zeroize) 스위치를 작동해서 동시에 모든 장비의 전자 정보를 삭제할 수도 있다. 또한 비상 탈출 시에는 모든 장비의 전자 정보가 자동 삭제된다.
만일 조종사가 적 지역에 불시착해서 마스터 제로화 스위치를 작동하면 수 분 안에 모든 장비의 정보가 삭제되기 때문에 전투기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도 무용지물이 된다.
제로화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단순히 전자 정보만을 삭제하는 기능이 있다. 원본 SW를 리로드(Reload)하면 복구된다. 다른 하나는 아예 장비 복구가 불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런 경우에는 장비를 교체해야 한다.
SW로 제로화 기능 추가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고난도 기술도 아니기 때문에 유사시 전자 정보의 유출 방지뿐만 아니라 적이 우군 무기를 탈취하더라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이 기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모든 무기에 이런 기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로 작동되는 무기에 이 기능 추가 시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경제적이다. SW로 작동되어 현재 운용되고 있는 무기는 필요성 검토를 해 보고, 앞으로 개발될 주요 무기는 이 기능을 기본사양으로 하면 된다.
우리 군 무기의 제로화 기능 보유 여부는 보안상 밝힐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전자정보수집기, 조기경보통제기 등 항공기, 다양한 무기체계 정보가 연동된 지휘통제체계(특히 이동형), 함정, 전차 등은 반드시 이 기능의 필요성을 검토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됐다. 우리 군도 이런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 또 우리나라 무기 수출이 활발한 시점에서 국산 무기에 이 기능을 추가한다면 신뢰도가 더 향상될 것이다.
이성남 전 공군항공SW지원소 연구소장·예비역 공군대령 pridesof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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