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광풍은 '융합'이라는 키워드를 시대적 흐름의 대명사로 만들고 있다. 일상적 용어가 된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로봇, 스마트헬스케어 등 4차 산업혁명을 대변하는 각종 정보통신기술(ICT)이 시대적 유행처럼 우리 일상에 침투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 구성원 간 디지털 격차는 급격히 벌어지고, 국가의 미래 생존과 젊은 층만을 위한 '융합'인 듯하다. 마치 ICT만의 결합으로 이뤄진 융합시대인 것처럼 비춰지는 양상이 확연하다. 이와 맥을 함께해 지식사회에서는 교육과 연구, 나아가 학문 간 융합을 독려하고 있다.
새롭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에서도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핵심 과제 요소로 부각되면서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떠오르자 과학·ICT 부처 개편과 '디지털융합혁신부' 신설을 통해 ICT 전담 부처로서의 컨트롤타워 역할론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또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을 통해 디지털플랫폼 정부 구축을 위한 야심 찬 계획의 시동을 걸고 있다.
필자는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 바람이 ICT 기반에 근거한다는 방향성에는 일말의 의구심을 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세계적 대문호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라는 인생의 진리를 떠오르게 한다. 즉 'ICT 기반의 융합이 왜 필요하며, 우리는 기술 진로와 혁신을 위해 왜 융합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을 간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누구나 과학기술 기반의 융합과 혁신은 세계적 추세며 시대적 숙명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융합은 왜 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기준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즉 융합은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롭고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문제 해결과 가치 창출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ICT 기반 융합으로의 방향성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융합을 통한 기술 개발의 나침판과도 같은 역할은 단언컨대 인문사회 분야와 학제적 연구를 통해서만이 실효적 가치와 지속 가능한 혁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필자는 스포츠사회학 전공자로서 운동재활 분야 전공자를 육성하고 있다. 연구 또한 의료보건·ICT 분야와 융합연구를 통해 재활환자 및 소외계층을 위한 건강서비스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 한국연구재단 문화융복합단의 혜택을 받아 연구책임자로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연구 내용은 운동 재활을 통한 병원 환자의 회복을 돕고, 퇴원 후에도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운동재활이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다. 학문 구성은 ICT 분야, 보건의료 분야(의학, 간호, 물리치료), 전자공학, 디자인 분야 등이다. 제한된 병원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입원 환자의 회복을 극대화할 것인가를 어젠다로 해서 출발했다. 그 과정에 환자가 경험하는 병원 내 생활 세계의 요구 사항에 근거해 실효적 재활에 요구되는 시설, 도구, 프로그램 요소를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각종 제약 요인을 제거하며 운동재활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동기 유발 요소를 제공하는 ICT 플랫폼을 개발했다.
7년 융합연구 과정에서 다양한 배움과 깨달음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인문사회학과 과학기술 학문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연구의 토양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융합연구란 학문 간 하모니며, 이것은 연구자 간 교류의 장을 끊임없이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함이다. 그러나 융합연구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으로서 인문사회학 기반의 연구 여건은 늘 뒷전에 밀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새롭게 출발한 윤석열 정부에서는 '속도와 방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융합연구 토양을 다질 수 있는 융합 R&D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이은석 가천대 운동재활융합연구소장·운동재활학과 교수 yies@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