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션' 속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는 화성에서 탐사 임무를 수행하던 중 뜻하지 않은 사고로 홀로 남겨진다. 다음 탐사대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 시간은 4개월. 주인공은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화성의 흙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과학자들이 실제 달 토양에서 식물을 키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폴로 탐사선이 채취한 실제 달 토양에서 애기장대 싹 틔워
최근 안나 리사 폴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팀은 아폴로 탐사선이 채취한 실제 달의 토양에서 애기장대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는 데 성공해 국제학술지 '커뮤니케이션스 바이올로지'에 발표했다. 그동안 달의 토양을 모방한 흙에서 식물을 재배한 적은 있지만 실제 달 토양에서 싹을 틔운 건 처음이다.
우선 연구팀은 세포를 배양할 때 쓰는 플라스틱 접시 안에 화분 역할을 할 관 수십개를 배열해 초소형 정원을 만들었다. 연구에 쓸 수 있는 달 토양은 겨우 12g. 양이 적은 만큼 샘플 화분도 초소형이어야 했다. 연구진은 초소형 관 화분 각각에 달 토양 0.9g을 담고 애기장대 씨앗을 3~5개씩 심었다. 이후 물과 영양액을 주입하고 햇볕을 쫴 주는 등 일반 화분처럼 관리하며 관찰했다. 다른 관 화분에는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 채취한 흙과 화산재로 달의 토양을 모방한 흙을 담아 대조군을 만들었다.
그 결과 씨앗을 심은 이틀 뒤부터 모든 화분에서 싹이 났고, 6일째까지 같은 속도로 자라 발육상태가 똑같은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연구를 이끈 폴 교수는 “매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며 “달의 토양이 식물의 호르몬과 생체 신호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 토양에서 자란 애기장대 성장 저해
그러나 6일 뒤부터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조군 화분의 식물은 쑥쑥 잘 자라는 반면에 달 토양 화분 식물들의 발육 상태는 제각각이었다. 어떤 식물은 잎이 작고 어떤 식물은 뿌리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대조군 화분과 비교했을 때 달의 토양에서는 식물이 자라는 속도가 느렸다. 심지어 화분 하나는 식물이 죽고 말았다.
좀 더 정확한 확인을 위해 연구진은 20일이 지난 시점에 달 토양에서 자란 식물을 꺼내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랬더니 식물의 유전자에는 염분이나 금속, 산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발현되는 패턴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식물이 달 토양의 다른 점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였다”며 “이 스트레스가 식물 성장에 영향을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 토양을 채취한 위치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연구진이 사용한 달 샘플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와 12호, 17호가 채취한 토양이다. 이 중 아폴로 11호의 토양 샘플의 식물에서 스트레스 징후가 가장 많이 나타났다. 이 토양은 다른 토양에 비해 달 표면의 가장 얕은 곳에서 채취한 샘플이다. 그만큼 우주에서부터 날아오는 태양풍에 더 많이 노출됐고 토양 구성성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레골리스(Regolith)'로 불리는 달 토양은 지구의 흙과는 구성 성분이 매우 다르다. 주로 먼지, 흙, 부서진 돌조각 등으로 이뤄져 있고 매우 건조해서 푸석푸석한 편이다. 수분은 물론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미생물이나 무기물질이 부족하다. 태양풍이나 우주방사선 등 극한의 우주 환경에 노출되면서 구성 성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한다. 앞으로 과학자들이 달에 가서 임무를 하거나 이주해서 살기 위해 꼭 알아내야 할 부분이다.
폴 교수는 “그동안 식물재배 실험은 달에서 토양을 채집해 지구로 가져올 때 토양 안에 병원체가 있는지, 알려지지 않은 성분이 있는지, 지구의 육상생물에 해가 되는지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며 “후속 연구를 진행해 식물이 달 토양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자라게 하는 방법을 알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달에서 산소를 만들거나 음식을 만드는 기술에 첫걸음을 뗀 것으로,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인간을 달로 보내는 연구 또한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식물은 달의 토양에서 자랄 수 있을까? 폴 교수는 이 질문에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글: 이윤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