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건물탄소중립 실현과 신성장산업 육성 방안

건물탄소중립에서 가장 중요한 설비는 냉난방 열원 설비다. 화석연료를 전기로 바꾸고 또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고효율 장비인 히트펌프가 필요하다. 유럽·중국·일본 등에서는 공기열과 지열, 수열 히트펌프를 사용해 냉난방을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공기열을 제외하고 있다. 2015년부터 수 차례 신재생에너지 지정을 검토했지만 효율 저하, 하·동절기 전력수요 증가, 대기업 시장 독식 우려 등의 사유로 신재생에너지 지정을 보류했다. 그러는 사이 중국과 유럽 국가는 공기열 히트펌프 분야 기술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냉난방 수요 증가에 따른 시장 규모 확대의 수혜를 누리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전자신문은 전문가 서면 좌담회를 개최해 공기열&공기조화기 신재생에너지로 지정 타당성을 검토하고 후발주자로서 국가적 산업 경쟁력 확보 방안을 논의했다.

박춘경 코벡엔지니어링 대표.

윤용상 한국에너지전산연구소 박사.

류평 KT전남본부 법인 본부장.

-현재의 건물탄소중립 정책에 대한 평가와 새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박춘경(코벡엔지니어링 대표)=첫째, 저비용 탄소중립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이를 실행하기 위해 과도한 혈세가 투입되거나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정책으로는 목표달성이 어렵다. 건물 신축 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 비율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지열히트펌프를 통한 냉난방으로 의무비율을 맞추고 있다. 이는 유럽, 일본 등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이미 지정된 공기열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신재생에너지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열은 공기열 투자비의 2배임에도, 공공건물 신축시 의무 비율을 충족하기 위해 값비싼 예산을 들여 지열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또 건물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중 냉난방 비율이 가장 높기(60~70%) 때문에 비용이 낮은 공기열 히트펌프가 필요하다.

이는 마치 서류 한 장 보내는데 오토바이로 퀵서비스 하면 될 것을 무조건 고급 승용차에 태워 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난해 12월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비율을 상향하는 시행령이 발효됨에 따라 이 문제는 민간의 영역까지 더 확대되어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각종 임대료 및 분양가의 인상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사료된다.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제로에너지 빌딩'과 기축 건물을 대상으로 한 '그린 리모델링'시에도 냉난방설비는 신재생에너지법을 따라야 하고, 환경부 사업도 신재생에너지법을 따라야 한다. 탄소중립 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형태이다.

건물 부문의 경제적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 공기열 신재생에너지 지정을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한다.

둘째, 건물탄소중립을 신성장산업 육성과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일자리 창출, 국민건강 증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공기열이 신재생에너지로 지정될 경우, 국내보다 더 우수한 기술 경쟁력을 갖춘 해외 사업자의 설비와 공기열의 일종인 대기업의 시스템 에어컨이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따라서 공기열 히트펌프를 국내 중소기업이 주로 시공과 유지보수를 담당하고 있는 공기조화기와 연동·구축할 때만 신재생에너지로 인정하도록 시행령을 보완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나라 산업 경쟁력이 우수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에너지와 공기질의 데이터화를 실현한다면 국민건강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에서 산업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셋째, 탄소중립 실현과 상충되는 법령의 정비가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시 제 2017-47호 '건축물의 냉방설비에 대한 설치 및 설계기준' 제2장 4조와 산업부 고시 제 2020-197호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이 대표적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연면적 1000㎡ 이상 건축물 신축이나 증축 등은 '냉방설비용량의 60% 이상을 심야전기를 이용한 축냉식, 가스를 이용한 냉방방식, 집단에너지사업허가를 받은 자로부터 공급되는 집단에너지를 이용한 지역냉방방식, 소형 열병합발전을 이용한 냉방방식,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냉방방식, 그 밖에 전기를 사용하지 아니한 냉방방식으로 냉방설비를 설치해야 하며'로 규정하고 있다.

또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심의기준을 살펴보면 건축물 신축이나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 시행 전 심의기준 내용 중에는 온실가스 감축에 초점을 두고 전기 사용 없는 냉방설치 등을 반드시 지키도록 돼 있다.

이렇듯 탄소중립의 핵심은 '전기화'임에도, 현재의 규정들은 전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이 규정이 합리적이었다 하더라도 탄소중립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반드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건물의 탄소중립은 한낱 구호에 그칠 뿐이다.

-건물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응신(명지대 IT&제로에너지건축센터 연구교수)=건물 탄소중립의 핵심은 온실가스의 직접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건물의 에너지효율 향상, 고효율기기 보급, 스마트에너지 관리, 저탄소 청정에너지 보급 등이다. 저탄소 청정에너지 보급은 히트펌프를 통해 극대화시킬 수 있고 히트펌프의 적용은 연료의 전력화를 의미한다.

전력화란 에너지 최종 소비단계에서 화석연료가 아닌 전기에너지로 대체해서 이용하는 것이며 저탄소전기를 통한 경제의 광범위한 전력화를 의미한다.

전력화로 인해 건물에 전기수요가 증가하는 문제는 히트펌프가 해결할 수 있다. 전열기를 이용해 열에너지를 공급하게 되면 에너지 변환효율이 낮아 필요 전력이 급증하므로 투입 전기에너지 대비 3-4배의 열을 이동시키는 P2H(Power to Heat)방식인 히트펌프는 건물탄소중립에 필수장비이다.

-건물탄소중립에서 저비용탄소중립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응신=건물탄소중립은 가성비의 개념을 가지고 접근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냉난방만 하면 되는 데에는 굳이 고비용을 들일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같은 가격의 보일러라면 효율이 더 높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보일러라고 하면 효율에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가성비를 따져 고르는 것이 합당하다. 50%의 공사비를 줄여 다른 신재생에너지에 투자기회를 창출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판단된다.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설비로 히트펌프를 거론했는데 히트펌프의 동작원리 및 지열과 공기열히트펌프의 차이점은.

◇윤용상(한국에너지전산연구소 박사)=외부환경 즉 공기, 물, 지반 등에서 열을 얻어 건축물로 전달하는 방식을 이용하는 냉난방 기기로 특정장소의 열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사용하는 기계를 히트펌프라고 한다. 열원에 따라 공기열 히트펌프, 수열 히트펌프, 지열 히트펌프라고 부른다.

지열히트펌프는 지중열 교환장치가 추가로 필요하다. 지하 150~200m 깊이로 천공해 전주 크기의 관을 삽입하는 방식으로 전원 주택의 경우 천공 2개 1500만~2000만원가량의 공사비가 추가된다. 용량에 따라 천공 갯수가 늘어난다.

지열은 현재 신재생에너지로 지정돼 있어 각종 혜택을 받고 있다. 보통은 가정용 전기요금제가 적용되는 것과 달리 지열 설치 가구는 누진세가 없는 일반용 전기 요금제 적용을 받는다. 지열히트펌프와 지중열 교환장치 공사비는 정부 예산 50% 보조와 지자체 추가 보조금으로 지원된다. 지열은 인구밀집지역 및 지반 취약 지역에 적용하기 어렵다. 대도시에 수십개의 천공을 한다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공기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열히트펌프의 효율이 우수하다 하더라도 경제성을 고려해 설치하는 것이 타당하다.

공기열은 아직 신재생에너지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자연 어디에나 존재하는 친환경 에너지원인 공기로부터 열을 흡수해 냉난방을 할 수 있는 구조다. 건물부문 온실가스 감소에 효율적이며, 지열과 달리 별도 천공 작업이나 지중열 교환장치가 불필요해 상대적으로 구축비와 유지관리 비용도 적게 들기 때문에 경제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공기열히트펌프가 신재생에너지로 지정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공기열을 신재생에너지로 지정 시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는지.

◇윤용상='겨울철에 효율이 낮다' '전력수요가 증가한다'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할 것이다' 등 여러 의견이 있었다. 특히 추운 날씨에 동작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은 인젝션 기술과 인버터 기술의 발전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성능을 나타내고 있다. 공기열 히트펌프의 일종인 시스템 에어컨을 보더라도 문제가 거의 없다고 판단된다. 추운 지역에서는 급탕 공급을 배제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실제 2018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기상청 데이터를 살펴보면, 최저온도가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를 가진 날은 서울의 경우 연평균 9.5일, 대전은 5.7일에 그치며, 대구와 광주의 경우에는 2일 이하, 특히 제주의 경우는 영하의 기온인 날이 거의 없다. 이렇듯 지역별 온도를 감안해 소비자가 지열·공기열·수열 등의 냉난방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안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건물 탄소중립의 목적 달성 뿐 아니라 신성장 산업육성 및 일자리 창출을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해외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생태계 조성과 기술 차별화를 통한 경쟁우위 확보가 필요하다. 이미 일본·중국·미국·유럽 등 많은 나라에서 공기열 히트펌프는 보편화 됐으며 기술 개발이 지속됐기 때문에 경쟁 우위확보를 위해서는 공기질과 연계한 공기 조화기 산업까지 동시에 확장해야 한다.

공기조화기는 건물 크기와 용량에 따라 건물별 맞춤형으로 최적화 설계와 시공이 필요한 설비로 대기업이 담당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중소기업과의 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AI·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건물 단위의 공기질 측정, 스마트한 온실가스 관리, 에너지 사용량 최적화 등 건물부문 디지털 전환의 신산업을 개발해 활성화할 수 있다.

-해외의 공기열 히트펌프 사례는.

◇윤용상=유럽연합(EU)에서는 '온실가스 저감'이라는 에너지 전환 정책의 목표 달성에서 '열 공급 부문'이 가진 중요성에 주목해 해당 부문 내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보급 목표를 수립하고 관련 제도들을 시행하고 있다. 국내와는 달리 '공기열'과 같은 자연 온도차 에너지원과 미활용 폐열까지 포함해 정책적 보급 지원 대상이 되는 재생에너지 열원 인정 범위를 다양하게 설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25년까지 히트펌프로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영국은 히트펌프 설치 구인난이 심하며 1만명의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와 함께 관련 산업 분야를 육성하고 있다. 체코의 경우에는 히트펌프 시장이 정부의 지원으로 매년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은 공기열 히트펌프로 2020년 기준으로 94%를 차지했다.

-공기조화기란 무엇이며 공기열 히트펌프와 결합 시 또 다른 장점은.

◇최공호(엔탑엔지니어링 대표·정보통신기술사)=공기조화기는 급기·배기·환기·냉난방을 하는 것을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을 사용하다 보니 감기환자가 줄어든 것과 같이 건물에 마스크를 씌우는 것과 같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를 정화하는 공기청정기와 가장 큰 차이점은 필터를 통해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받는 것이다. 현재 각 교실에는 공기청정기와 시스템에어컨만 설치돼 있다 보니 환기가 되지 않아 산소 부족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공기조화기를 통해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계속 순환시킬 필요가 있다. 공기열 히트펌프와 공기조화기 결합 시 건물 전체로 냉난방을 공급할 수 있다.

-공기열 히트펌프의 일종인 시스템에어컨이 대기업 위주인데 중소기업 보호 측면에서 의견은.

◇최공호=자동차와 가전 산업을 보더라도 대기업이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어야 많은 1차, 2차 중소기업, 협력업체가 경쟁력을 가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구조다. 공기조화기를 다루는 공조산업은 건물마다 다양한 환경에 맞춤형 설계와 시공이 돼야 한다. 시스템 에어컨을 대량생산으로 공급하는 대기업과 공기조화기를 맞춤형으로 구축하는 중소기업간 협력이 가능하다.

-제주도 재생에너지 공급 과잉에 따른 출력제한에 대한 의견은.

◇류평(KT전남본부 법인 본부장)=전기공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다. 제주도는 신재생에너지 과잉공급으로 오히려 생산을 제한을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지역의 수요를 더 많이 늘려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단은 전기자동차와 공기열 히트펌프를 통해 전기수요를 늘려보고 다른 조치를 선택해야 한다. 제주도는 특히 따뜻한 지역으로 공기열 히트펌프 효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최적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공기열 히트펌프가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지정 받기 위한 움직임은.

◇류평=올해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광역자치단체가 지역별 기후환경과 신재생에너지 수급상황을 고려해 조례로 '공기열'을 재생에너지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법이 개정되면 공기열 히트펌프가 건물부문 냉난방에 적극적으로 활용돼 관련 기술개발과 산업도 활성화될 것이고 온실가스 감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법개정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이해관계도 있기 때문에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 제 2조 제 4항에 '공기열 에너지'를 추가하고 관련 별표1 제6호에 공기열에너지 기준과 범위를 추가하는 '신재생에너지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법이 있다.

공기열에너지의 기준은 '공기의 열을 히트펌프를 사용하여 변환시켜 얻어지는 에너지로 공기조화기와 연결되어야 한다'로 정의해야 한다. 이 밖에도 정부의 규제혁신 의지에 발맞춰 규제혁신TF를 통해 신성장 분야 규제혁신으로 제안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건물탄소중립 실현과 유관 신산업 발전을 위해 제언할 부분이 있다면.

◇류평=공기조화기와 결합된 공기열 히트펌프를 신재생에너지로 지정하고자 하는 이유는 외국기업과 대기업이 중소·중견기업과 협업하도록 유도하고 저비용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도 있으나 또 하나의 큰 목표는 우리나라가 잘 할 수 있는 '공기질'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발현 및 미세먼지의 이슈는 건물과 같은 다중밀집 공간의 공기질에 대한 시민 안전 확보의 과제를 대두시켰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AI·빅데이터·클라우드를 접목해 건물 탄소중립 및 공기질 시장을 스마트화 함으로써 신성장 산업화할 수 있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물인터넷(IoT), 건축 정보 모델(BIM), 빅데이터 활용 등을 통해 기계설비산업과 첨단기술의 융복합으로 신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산업부로부터 NET 신기술 인증을 받은 'KT 'AI 빌딩 오퍼레이터' 솔루션이 그 활동의 일환이며, 데이터화가 가속화 되면 더욱 다양한 기업이 참여하고 신시장이 창출될 것이다.

<표-가스 흡수식 냉온수기와 전기식 공기열 히트펌프 비교>

김한식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