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양성' 나서지만…교육계·지자체 '동상이몽'

尹 대통령, 국가 과제 주문
대학·단체, 이권만 내세워
"지방대 위기 재촉" 반발
커리큘럼·R&D 개선 시급

장상윤 교육부 차관(오른쪽)이 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양성 특별팀 제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상윤 교육부 차관(오른쪽)이 1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재양성 특별팀 제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도체 인력 양성이 국가 과제로 떠올랐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계, 지방자치단체, 각종 단체 등이 자기 이권만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정원 규제와 같은 단편 대책만 언급하면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교육 커리큘럼부터 정부 연구개발(R&D) 사업까지 교육 환경 전반에 걸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초에 '반도체 등 첨단산업 인력양성'을 주문했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별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큰 논란은 증원 문제다. 교육부가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지방 대학들의 반대가 이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에서 비슷한 숫자로 증원하겠다고 했지만 지자체나 지방 대학 반발은 더욱 커졌다. 지자체는 “수도권 대학 중심 반도체학과 증원은 지방대 위기를 재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개최한 전문가 포럼에서도 균형 발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설비를 거점 국립대에 투자하고 주변 대학이 함께 활용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교직원 단체도 나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반도체 기업에 학사, 석·박사만 필요한 게 아니다. 부족 인력의 과반이 고졸 인력”이라면서 “특성화고 육성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어떤 정책에 대해서든 결론은 자기 분야 예산 더 증액하고 규제 풀어달라는 것으로 나온다”며 “주장하는 소재만 반도체 인재양성이지 결국 같은 주장”이라고 꼬집었다.

반도체 인력 양성 대책이 국가 과제로 거론됐지만 교육계·지자체·각종 단체 등 저마다 자기 이권만을 앞세운 인력 양성 체제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2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학생들이 반도체 제작 기초 과정을 교육받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반도체 인력 양성 대책이 국가 과제로 거론됐지만 교육계·지자체·각종 단체 등 저마다 자기 이권만을 앞세운 인력 양성 체제 개편을 주장하고 있다. 2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학생들이 반도체 제작 기초 과정을 교육받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정작 산업계는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고 있다. 반도체는 설계부터 전후 공정까지 기술과 학문이 복합돼 나오는 제품이다. 전자공학부터 물리·화학, 첨단 소재, 기계·장비와 심지어 수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다. 반도체학과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인력도 고졸부터 박사·박사후 고급인력까지 고르게 필요하다.

문일 한국공학교육학회장은 20일 “특정 학과 신설과 증설에 그치는 것보다 산업계의 빠른 기술 발전에 학계가 따라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면서 “화공과를 예로 들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본 과목은 같지만 50년 전에는 석유화학 추출을 주로 다뤘다면 지금은 반도체, 나노 이런 예제 중심으로 다루는 것이 산업계 변화에 발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설계 분야 기업은 중소기업으로도 우수 인력이 갈 수 있도록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반도체설계 회사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학과나 관련 전공은 대부분 대기업만 가려 한다”면서 “대·중소기업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석·박사급 고급인재를 양성한다고 해도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환경이 문제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대학이 각종 R&D 사업에 참여하면서 첨단 설비와 기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자연스럽게 인재가 양성된다는 점이다.

인재양성 관련 논의를 주도한 사회관계장관회의는 4월 말 이후 개최 자체가 불투명하다. 사회부총리 인선이 늦어지면서다. 정부는 교육부 차관을 팀장으로 하고 관계부처 1급 실장들이 참여하는 특별팀을 꾸렸지만 부처 사업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장관급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정부 인사는 “다부처가 논의한다 해도 여전히 부처 칸막이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