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표가 공란으로 배부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후 치르는 첫 모의평가에서 또 출제오류가 나왔다. 지난 해 수능 사태로 비판을 한몸에 받은 정부가 2월 발표한 '수능 출제 및 이의심사제도 개선안'을 두고 실효성 논란이 일어날 전망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9일 치른 6월 모의평가 정답을 21일 확정하고 지구과학Ⅱ 14번 문항에 대해 '정답 없음'으로 판정했다고 밝혔다.
14번 문항은 모두 정답 처리하기로 했다. 이 문제는 해파에 관한 문제다. 심해파에서 천해파로 천이되는 모습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파장에 대한 설명을 <보기>에 담았다. <보기> 항목에서 맞는 설명을 고르는 문제인데, 해석에 따라 보기 항목의 진위가 달라져 문제가 됐다. 출제자는 첫 번째 설명이 맞다고 보고 선택지를 제시했지만, 이의심사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전원 다른 해석을 통해 첫 번째 설명이 거짓이라고 판단했다.
심해파와 천해파의 구분 기준이 되는 파장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이의심사에서 핵심이 됐다. 출제자는 기준 파장을 '해파가 심해에서 발생했을 때의 파장'으로 해석했지만 여러 전문가들은 '특정 지점에 도달했을 때의 변화된 파장'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대로라면 'h1은 h2의 10배'라는 첫번째 보기 항목과 달리 h1은 h2의 10배가 넘는다.
개선된 이의심사제도에 따라 이번에는 출제에 참여하지 않은 전문가 3인이 이의 신청접수 내용을 모니터링했다. 3인 모두 해당 문항에 대해 검토가 필요한 중대사안으로 분류했으며, 평가원은 전문 학회 3곳과 외부 전문가 5인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전문학회 3곳과 외부전문가 5인 모두 첫 번째 항목은 거짓이라는 의견을 내면서 이의심사실무위원회가 정답 없음으로 결정했다.
개선된 이의심사 제도를 통해 중대 오류는 잡을 수 있었지만, 출제 오류는 막지 못해 파장이 예상된다.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II 20번 문항 오류 판정 이후 교육부는 이의심사 과정 절차와 기준이 미흡한 것을 인정하고 지난 2월 출제 및 이의심사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개선안에는 사회·과학 분야 전문가인 검토자문위원을 8명에서 12명으로 확대해 오류 검토 기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회나 과학 과목에서 오류가 많이 나타난데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이번 역시 지구과학Ⅱ 과목에서 오류가 드러났다. 모니터링 과정부터 전문학회와 외부 전문가 모두 오류라고 판단한 내용을 출제 과정에서는 잡지 못했다.
'정답 없음'으로 오류에 대응은 했지만 피해는 응시 학생들이 고스란히 보게 됐다. 정답 없음에 따라 모두 정답 처리되면서 표준점수가 낮아지기 때문에 지구과학Ⅱ를 선택한 학생들이 불리해질 수 있어서다. 과학Ⅱ를 치르는 학생들은 상위권 학생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출제 오류로 인한 타격이 크다. 6월 모의평가 오류 발생에 따라 올해 수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평가원은 “6월 모의평가 출제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아 문항 오류가 발생해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며 “출제 과정에서 '수능 출제 및 이의심사제도 개선방안' 적용 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해 출제 단계마다 학문적 엄밀성과 문항의 완성도를 점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