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무엇인가. 과학은 자연 현상을 관찰, 실험, 입증을 통해 원리와 법칙을 밝히는 것이다. 기술은 과학으로 밝힌 원리와 법칙을 실생활에 활용하는 수단이다. 옛날로 가 보자. 나일강이 범람하고 있다. 쏟아지는 물폭탄은 이집트인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공포와 불안을 초래했다. 나일강 범람의 원인이 신의 분노가 아니라 상류 지역의 계절성 폭우라는 것을 알아낸 뒤엔 두려움이 없어졌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를 알아냈기에 미리 피하면 됐다. 이것이 과학이다. 범람하는 강물이 토지를 비옥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냈기에 농사를 지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과학의 원리, 법칙을 응용한 기술이다.
우리가 코로나19를 두려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침투 및 작동원리를 몰랐고 백신·치료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알아냈다. 호흡기를 통한 감염이기에 마스크를 착용해서 피할 수 있었고, 백신·치료제를 개발해 기술로 이겨낼 수 있었다.
죄수들이 갇힌 동굴이 있다.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가 세상 전부인 줄 안다. 죄수 한 명이 도망쳐서 진짜 세상을 보고 돌아와 진실을 말한다. 너희는 그동안 가짜만 보고 있었다고. 동굴 안 죄수들은 믿지 못한다. 생생하게 눈에 보이는 그림자가 어떻게 가짜일 수 있을까. 우리는 정말 생생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현실세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플라톤은 현실세계는 가짜이고 이데아가 진짜라고 했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이분법적 프레임은 현실을 부정하며 신을 찾았고, 자연현상 너머 진리를 탐구하는 원동력이 됐다. 중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데아가 있던 자리에 신을 두었다. 현실은 가짜이고 천국이 진짜이니 천국에 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됐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했고, 신이 없는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살지 이성으로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도 여전히 선과 악, 아군과 적군, 너와 나를 구분하는 이분법 사회다.
중세는 오랫동안 신이 지배하는 이분법 사회였다. 과학기술은 이성을 일깨워 신성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제한됐다. 이성에 의존하는 과학기술이 견뎌낼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동양의 과학이 서양의 과학을 압도했다. 많은 과학자가 신성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요령껏 죽음을 면했다.
중세 시대 과학기술에 숨통을 터 준 사람이 있다. 1287년 영국 서리 지역의 오컴에서 태어난 성직자 윌리엄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인공지능 DABUS를 이용해 2건의 발명을 한 곳도 그곳이다. 그는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한 사람이다. 신의 계시에 의해서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신앙 영역은 이성으로 알 수 없다.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밝히려 해선 안 된다. 다만 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도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이성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과감하게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분리했다. 그래서 면도날이다. 신성에 도전하지 않는 한 과학기술을 통해 자연현상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며 지동설을 주장해도 신의 존재와 신성을 부정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 그래서 과학기술 토대 위에 쌓아올린 현대사회는 오컴의 윌리엄에게 빚이 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정신활동 전부 또는 일부를 모방해도 유전자와 유전정보로 이뤄진 인간의 고유 가치를 부정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 그 범위 안에서 인공지능은 허용되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지속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신의 영역에서 분리되면서 과학기술이 발전했듯 정치에서 과학기술을 분리하면 어떨까. 현대판 오컴의 윌리엄이 필요한 이유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