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과 웹소설이 다른 장르를 잉태하는 원천 지식재산권(IP)으로 주목받는다. 천만 관객을 이끈 영화 '신과 함께', OTT 오리지널 드라마로 군필자 트라우마를 건들며 흥행한 'D.P.'를 비롯해 '지금 우리 학교는' '이태원 클라쓰' '미생' '김비서가 왜그럴까' '유미의 세포들' '안나라수마나라' '경이로운 소문' 등은 모두 동명의 웹툰, 웹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한 영상 물이다. '슈퍼스트링' '신의탑' '갓오브하이스쿨' '노블레스' 같이 웹툰 IP 기반 모바일 게임도 존재한다.
원천 IP로서 가치가 높은 이유는 웹툰, 웹소설 특유의 상상력과 다양성이다.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게임, 광고, 테마파크, 굿즈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되는 콘텐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인기가 검증된 IP를 활용하면 원작 인기를 잇고 불확실성은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최근에는 2차 콘텐츠 제작에는 단순히 웹툰·웹소설을 영상화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웹소설을 웹툰으로 제작하기도 한다. 네이버 웹소설 '재혼황후'는 네이버 웹툰에서 다시 연재되고 있으며 웹소설 '세계관 최강자들이 내게 집착한다'는 일본 하쿠센샤와 협업으로 카카오페이지에 웹툰으로 연재되고 있다.
또 성공한 작품을 2차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획 단계에서 IP를 활용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사업을 전개하거나 보유한 IP를 서로 연계하는 전략도 실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슈퍼웹툰 프로젝트'로 탄생한 '승리호'가 대표적이다.
◇K-웹툰과 웹소설 인기 비결은 '트렌디'
웹툰과 웹소설은 국내외 MZ세대 취향을 저격했다. 긴글을 선호하지 않고 나의 취향을 관철하는 세대 특성을 반영한다.
웹소설의 시작은 인터넷소설에 기반을 둔다. 하이틴 로맨스를 기반으로 형성됐던 인터넷소설은 기존 소설과 비교하면 외계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호흡이 길지 않고 단순하면서 스토리 플롯도 어렵지 않아 인기를 끌었다. 세대가 가지고 있는 감성도 녹여내며 '귀여니' 같은 스타작가도 배출했다.
웹소설은 인터넷소설 연장선에 있다. 웹소설은 1편이 500자 내외로 구성된다. 짧게는 60회, 길게는 몇백 회가 넘도록 연재된다. 한편 한편의 구성은 어렵지 않다. 단순하면서 100~200원 소액 결제로도 즐길 수 있기에 결제 저항선이 낮다. 이용자는 부담없이 여러 작품을 접하며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성향은 해외도 다르지 않다. 같은 세대가 공유하는 공통점이다. 네이버웹툰 글로벌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8200만명을 돌파했다. 카카오웹툰 역시 성장일로다.
◇혁신의 K-웹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와 게임에서 따온 비즈니스 모델
과거에는 소설가, 만화가 등단이 무척 고되고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웹툰, 웹소설 수요가 많아지면서 다양한 작품을 발굴을 위해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도 작가로 등단할 수 있다. 덕분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가를 발굴했다. K-콘텐츠의 장점인 다양한 장르와 스토리 라인이 나오는 기반이 됐다.
대형 플랫폼은 상시 작가를 모집하고 있다. 네이버는 '챌린지 리그'를 통해 누구나 작가에 도전해 인기를 얻으면 정식 연재로 넘어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도전만화'나 '캔버스'로 작가를 발굴하는 시스템도 운영한다. 카카오웹툰은 신진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넘어 작가 양성을 위한 '올인원' 인턴십 프로그램도 내놨다. '아카데미의 웃음벨 캐릭터가 되었다' '후궁듀스 111 당신의 후궁에게 투표하세요' 등이 데뷔했다.
K-웹툰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수익모델은 글로벌 만화시장에 혁신을 이끌었다. 광고와 콘텐츠 판매를 결합해서 만든 웹툰 창작자 수익모델인 PPS(Page Profit Share) 프로그램이나 이용권 판매, 기다리면 무료 비즈니스도 K-웹툰 플랫폼이 처음 시작한 것이다.
웹툰은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는 수익모델을 차용했다. 퍼즐게임 '애니팡' 하트처럼 개별 작품에 이용권 개념을 적용했다. 기존 권당 결제의 심리적 거부감을 낮췄고 짧은 호흡으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했다. 이 모델이 처음으로 적용된 '달빛조각사'는 큰 성공을 거뒀다. 후에 게임으로도 출시됐다. 기다리면 무료 역시 '시간을 산다'라는 퍼즐, 전략류 게임 수익모델을 빌렸다. 이용자 모객과 매출 성장의 토대가 됐다.
◇19금 콘텐츠까지 포옹하는 다양성
국내 웹툰 시장 양대 산맥은 네이버와 카카오다. 대중성에 집중한 만큼 수위높은 19금 콘텐츠는 다루기는 부담스럽다. 이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웹툰 플랫폼들이 늘어나며 틈새시장을 넘어 K콘텐츠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탑툰, 레진코믹스, 봄툰, 미스터블루 등이 대표적이다. 장르도 남성 취향 성인물, 무협, 누아르, NTR, 연애 등 다양하다.
탑툰은 '편의점 샛별이' 'H메이트' '청소부K' 등 남성 성인콘텐츠로 시작해 웹소설플랫폼 노벨피아, 코스닥 상장사 탑코 미디어까지 이어지는 웹콘텐츠 상장사로 거듭났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성인물에 최초로 유료모델을 도입하며 소프트 성인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 성인을 위한 웹툰 전문 플랫폼으로서 성인물 장르가 무조건 성애 장면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대형 플랫폼들도 시장이 커지자 비슷한 콘텐츠를 내놓기 시작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웹툰은 '17금'이라는 대안 장르를 제시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어른 로맨스 공모전', 네이버웹툰은 '매운맛 로맨스 공모전'을 열었다. 탑툰에서 연재되는 성인물과 비교해 수위는 훨씬 낮지만 살색살색한 분위기를 풍기는 장르다.
◇웹툰·웹소설이 양지로 꺼낸 BL, 국내 넘어 글로벌로
BL(Boys Love)은 남성과 남성이 사랑을 나누는 장르다. 남성이 주체가 되어 애정문제로 갈등하고 스킨십을 나눈다. 동성애나 성정체성에 대한 담론과 갈등, 사회적 시선을 다루는 퀴어 콘텐츠와 다르다. 대중이 가볍게 소비하는 데 목적을 둔다.
BL은 아이돌 문화 '팬픽'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 멤버 동성애를 그리는 팬픽을 창작하고 공유하면서 놀아왔다. 때문에 업계에서 BL은 수요와 공급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쉬쉬했던 서브컬쳐 중의 서브컬쳐였다. 사회 정서상 대놓고 게이물을 전면에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부터 웹툰, 웹소설 업계에서 양지로 꺼내놓기 시작했다. 음지에 있던 수요는 밖으로 나왔다. 2020년 BL 웹드라마 '너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 이후, '미스터 하트' '위시유' '컬러 러쉬' '나의 별에게' '블루밍' '시멘틱 에러' 등 BL 장르물이 계속해 제작되고 있으며 '비밀사이' 등은 영상화가 추진되고 있다.
'시맨틱 에러'의 경우 6주 연속 TV 프로그램 1위를 기록했고 '나의 별에게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재탄생하고, 시즌2 제작까지 확정지었다. 또 국산 BL물들은 일본과 대만, 동남아 등 주요 VoD차트 1위에 오르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다.
BL물은 특히 2030 여성층에 인기다. 소비력이 강한 2030 여성들의 취향이 BL 콘텐츠의 확산으로 이어져 K-팝처럼 BL 콘텐츠 시장도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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