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기술력이 향상하는 모태이자 세계 경쟁 최전선이다. 구자균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장(LS일렉트릭 회장)은 이런 만큼 정부가 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시대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가 세제지원, 투자를 통해 기업이 기술력 확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모두 힘을 합쳐 연구개발(R&D)에 힘쓸 수 있도록 각종 지원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 도움이 절실하다고 했다. 구 회장은 기업인 LS일렉트릭 회장이자, 기술 기업들이 모인 산기협 회장으로서 이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윤석열 정부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산기협 회장에 재임한 구 회장을 만나 그의 현재 진단,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새 정부 출범으로 산기협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기업이 바라는 새 정부 핵심 과제는 무엇인지.
▲글로벌 산업이 대전환기에 접어든 지금은 앞선 분야에서는 초격차를 만들고, 뒤처진 분야는 추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지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산기협은 새 정부 출범 시기에 맞춰 '정부가 꼭 추진해야 하는 산업기술 혁신정책'을 건의한 바 있다. 건의 정책은 크게 세 가지다. R&D 투자 확대를 위한 세제지원, 민간중심 국가 R&D 체계 조성, 그리고 중소기업 R&D 역량 강화가 그것이다.
R&D 세제지원 개선안 관련해서는 '디지털전환 및 탄소중립에 대한 세제지원'과 '기술혁신 기업 상속세 개선 방침'이 국정과제에 반영돼 기업이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정부에서 R&D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세제지원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또 기업은 새 정부가 천명한 민간중심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이 크다. 국가 R&D 80%를 담당하는 기업이 정부 기술혁신계획 수립 단계부터 참여한다면, 기술경쟁력 확보에 훨씬 유리할 것이다. 지금 운영하는 '민간 R&D 협의체' 등을 정부가 좀 더 적극 활용하기를 바란다.
중소기업 R&D 수준을 높이는 것도 급선무다. 중소기업 연구소 64%가 연구인력 4인 이하 소규모 연구소로, 인력은 물론 실험장비와 기술정보 등 모든 것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를 보완하려면 다른 기업이나 기관과 협력이 절실하지만,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찾기 어렵다. 중소기업이 R&D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정보와 솔루션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플랫폼 구축이 중요하다.
-갈수록 경영환경이 어려워지고 있고, R&D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인으로서, 또 거대 협회를 이끌면서 느끼는 현재 기업 상황은 어떤지.
▲코로나19도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주요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환율과 이자율이 출렁이면서 기업들이 삼중고를 겪고 있다. 상당 기간 경기침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앞으로 기업 R&D가 위축될까 걱정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1997년도 IMF 외환위기를 제외하고는 R&D 투자를 지속 증가시켜 왔다. 외환위기 때에 감행한 R&D 부문 구조조정으로 기술경쟁에서 뒤처졌고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이를 교훈 삼아 R&D만큼은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2008년 금융위기에도 8%가 넘게 R&D 투자를 늘렸고, 코로나19 팬데믹이 극심한 2021년에도 10%가 넘는 기업이 R&D 투자 증가계획을 밝혔을 정도다.
그러나 이번처럼 복합적 위기는 기업들의 의지만으로는 극복이 어렵다. 실제 산기협이 3월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 67.5%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R&D 투자 감축을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이는 미래 국가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유일한 자원인 우수 인재 해외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R&D 투자 감소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의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정부가 R&D 지원강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는데, 이것이 좀 더 신속하게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그간 정부 R&D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많았다. 민간 목소리를 반영한다면 개선할 수 있을지. 또 협회 '민간 R&D 협의체'에 대한 정부, 기업 반응은 어떠한지.
▲정부의 적극적인 R&D 정책은 우리 기술력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다. 다만 기업 R&D 역량이 크게 높아졌고, 기술혁신 속도도 빨라졌기에 정부와 민간의 긴밀한 협력이 더 중요해졌다. 이런 공감대에 따라 산기협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력해 지난해부터 민간 R&D 협의체를 추진하고, 올해 1월에는 과기정통부와 국가필수전략기술 육성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민간 R&D 협의체에는 현재 삼성전자, LG화학, SK이노베이션, 카카오 등 122개 주요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가장 큰 현안인 탄소중립, 신재생에너지, 디지털 전환과 미래 산업으로 주목받는 첨단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분야 정책에 반영할 R&D에 대해 논의 중이다.
참여 기업은 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도와줘야 할 일이 무엇인지 논의하고, 그 내용이 협의체를 통해 직접 '과기혁신본부'에 전달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과기혁신본부도 협의체를 통해 기업이 어떤 기술에 주목하는지, 기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협의체가 자연스럽게 다른 업종 기업과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기술 교류의 장 역할도 하고 있다. 실제 탄소중립 분야에서는 자체적으로 참여 기업 간 협력과제를 발굴하고 업무협약도 추진 중이다. 윤석열 정부가 민관협력을 강조하고 있기에 앞으로 협의체 역할은 한층 커질 것이다.
-산기협은 디지털 전환에 관심이 많고 일찍부터 여러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디지털전환 격차가 큰데 어떤 해결책이 있을지.
▲디지털 전환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이 매우 중요한 분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제품 원자재 공급,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각각 역할을 담당해 가치사슬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이 효과를 거두려면, 이 커다란 생태계 안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진행해야 한다. 만약 부품기업과 완성 차 기업이 다른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한다면, 둘 간 데이터 공유는 불가능하며, 디지털 전환 효과도 누릴 수 없게 된다.
한편으로는 디지털 전환을 추구하는 기업과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 간 연계가 매우 중요하다. 아직도 상당수 기업은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다. 만약 디지털전환 수요기업과 솔루션 보유기업들을 모아 연계하는 플랫폼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문제와 해결책에 대한 논의를 통해 최적의 파트너가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통해 건강한 디지털전환 산업 기반이 다져질 것이다.
지난해 출범한 'DT선도기업협의체(KoDTi)'는 이런 문제의식을 지닌 기업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산업 생태계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함께 논의하고, 경험을 나누는 것이 주목적이다.
KoDTi에는 포스코, KT, 카카오, LG전자 등 200여개 선도기업과 디지털 혁신 기업, 그리고 솔루션 제공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KoDTi를 중심으로 국내외 DT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대·중소기업 매칭을 활성화해나갈 예정이다. 특히 선도기업들의 디지털전환 노하우가 후발 기업에 전달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 예를들어 LS일렉트릭 경우 지난해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으로 선정된 청주 스마트 팩토리 경험을 15개 중소 협력사들과 나누고 있다. 스마트공장 플랫폼 '테크 스퀘어'를 만들어, 스마트공장 설립부터 유지보수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는데,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런 모델을 KoDTi를 통해 확산 발전시키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산기협은 세계 최대 산업 데이터 공유 플랫폼을 보유한 독일 국제데이터공간협회(IDSA), 독일 기술 기업 디지털 전환에 앞장서는 전자전기산업협회(ZVEI)와 MOU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세계적인 디지털 전환 우수 사례를 확산하고 글로벌 기업 간 협력 기회를 만들겠다.
-최근 '기술개발인의 날' 제정을 주장하는 등 기업 연구원 사기진작에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안다.
▲대한민국은 서구에서 200년 이상 걸린 산업화를 불과 50년 만에 이룬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나라 아닌가. 1960년대 라디오 하나 만들지 못하던 기술 빈국에서 벗어나, 이제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에 들었고,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57%,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71%를 차지하는 미래 산업 유망국가 반열에 올랐다. 부존자원도 없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것은 모두 산업 현장 최전선에서 땀 흘린 기업 연구자 덕분이다.
그러나 경제 발전 주역인 기업 연구자들에 대한 사회적 대접은 소홀한 것 같다. 기업에 소속된 연구원은 42만명에 달하며, 국가 전체 R&D 인력 72%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정부로부터 훈·포장을 받는 과학기술 유공자 중 기업인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
기업 연구자들은 자기 일에 큰 자부심을 느끼며, 본인이 개발한 기술이 국가 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국가가 성과를 알아주고 응원하면, 훨씬 신나게 일할 것이다.
여기에 착안해 기술개발인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하고 산업계 훈·포장 확대를 주장한 것이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은 이렇게 작지만 세심한 정책을 원하고 있다.
-이밖에 산기협 사업들과 앞으로 발전 방향을 소개해달라.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언택트 경제가 본격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등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런 급격한 변화에 기업들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서비스가 필요함을 느꼈으며, 이는 산기협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업들과 함께 무엇이 가장 어려운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등을 논의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바로 'IP R&D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기업이 R&D 전략을 세우는데 필요한 자사·경쟁사 기술정보와 특허를 분석해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 눈높이에 맞춰, 특허를 잘 모르는 연구자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기업 R&D 관리에 필요한 솔루션들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R&D 솔루션 플랫폼'도 선보였다. R&D 관리 솔루션은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필수지만, 중소기업들은 비용 부담 때문에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산기협의 R&D 솔루션 플랫폼은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연구 관리 시스템(PMS)과 디지털 연구 노트 등 필수 솔루션을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혁신 서비스를 계속 발굴하면서, 산기협을 'K-테크의 미래를 여는 최고의 혁신 플랫폼'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기업 R&D에 필요한 모든 것을 산기협에서 통합 서비스하는 것이 우리 계획이다.
또 기업 간 다양한 교류 활동을 늘려 강력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갈 것이다. 올해에는 '대구·경북 기술경영인 협의회'를 발족해 전자·전기, 철강, 자동차 등 주력산업 요충지인 대구·경북지역 기업 협력 기반을 마련했으며, 성장을 준비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교류하며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산기협 CEO 클럽'도 창설했다. 이밖에 예비 CTO들이 선도기업 CTO들의 기술경영 노하우를 전수받아 기업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차세대 CTO 교육과정'도 개설했다. 기술경쟁력이야말로 대한민국 발전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산기협은 7만여 기술혁신 기업과 함께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기업 의견을 정확히 정부에 전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으며, 이런 노력으로 정부와 파트너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부가 국정과제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 앞으로 민관협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며, 그만큼 산기협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산기협은 대한민국 산업기술혁신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대한상의, 무역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에 견주는 위상을 확보해 나갈 것이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한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구자균 산기협 회장은
구자균 산기협 회장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에서 국제경영학 석사,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와 고려대 교수를 역임했고 2005년 LS일렉트릭 관리본부장 부사장을 시작으로 기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2015년에는 LS일렉트릭 대표이사 회장직에 올랐다. 2019년부터는 산기협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