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바꾸어 놓은 변화를 꼽으라 한다면 비대면 원격 영상회의 플랫폼, 재택근무 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팬데믹 이전에는 모든 회의와 협업이 대면으로 이뤄지는 것을 당연시했고, 비대면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비대면 플랫폼에서 원격 영상회의를 2년 이상 진행하면서 우리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며, 비대면 온라인 영상회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의 영상회의 서비스 회사 '줌'(Zoom)은 최근 IBM의 시가총액을 추월했다.
현시점에서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에 놓여 있는 디지털전환을 빗대어 본다면 원격 영상회의도 사실은 개방형 협업 관점에서의 디지털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과학기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일찍이 OECD를 비롯한 독일, 스위스 등은 개방과 협력을 바탕으로 오픈 사이언스를 추진하고 있다.
OECD는 디지털 기술과 연구 협업 도구를 기반으로 공동 연구 환경 조성 및 연구 전에 주기별로 생산되는 성과물을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연구 성과의 후속 연구가 가능해지고 다양한 연구 협력 네트워크 형성을 가능하게 해서 연구개발(R&D) 추진을 가속하는 오픈 사이언스를 확산하고 있다. 독일 국립과학기술도서관은 오픈 사이언스 랩을 통해 R&D전략 수립, 도구 개발, 아이디어 공유 등 협업 연구 수행을 위한 지원을 수행하고 있다. 학술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공동 연구와 출판 지원 플랫폼을 제공, 더 개방적이고 협업적인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민간 영역에서는 연구자끼리 논문을 공유해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협업 관리 도구를 활발하게 이용하고, 연구자를 위한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도 자신의 연구 성과를 홍보하고 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특정 분야의 연구자 목록을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리서치게이트'(ResearchGate)는 연구 이력을 바탕으로 연구자 그룹을 추천하고 연구자 의사소통을 유도하는 협업 공간으로, 세계 연구자들이 활발하게 이용하는 개방형 협업 플랫폼 가운데 하나다.
특히 디지털전환 및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 생태계 강화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현시점에서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어떠한 디바이스를 이용하든지 원하는 서비스와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노력이 국가의 핵심 가치 확보를 위한 R&D 분야에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은 이제 연구자 PC가 아닌 불특정 다수가 소스 및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려놓고 공유하고 검증하는 방식의 개방형 협업으로 말미암아 발전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내에서도 R&D 효율화를 위한 협업 환경에서의 제약을 없애고 물리-가상 공간을 통합해서 최적의 개방형 협업 환경을 지원하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역시 R&D 환경의 디지털전환을 가속화하고 과학기술 혁신 플랫폼으로 도약하기 위해 AI 기능을 강화하고 데이터와 서비스를 융합한 지능형 통합서비스 플랫폼 '사이언스온'(ScienceON)을 구축,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사이언스온은 R&D 전 주기 활동에 필요한 과학기술 지식 인프라를 원스톱으로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국내외 최초의 통합서비스 플랫폼으로, 특히 팬데믹 시대에 연구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과학기술 지식 인프라는 KISTI가 수십 년 동안의 정보 서비스 대표 기관으로서 쌓아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구성한 방대한 기반 자원이다. 과학기술정보, 국가 R&D 정보, 연구데이터, 슈퍼컴퓨팅 자원, 정보 및 데이터 분석 기능 및 가상협업공간 등을 망라한다. 1억6000만건 이상의 과학기술정보 통합 제공, 다양한 과학기술 지식 인프라를 연계·융합하는 방식으로 R&D 동향 파악, 기획·성과관리 등 연구 전 주기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등 비대면 개방형 협업 환경 제공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사이언스온은 디지털전환을 위한 개방형 협업 활성화 지원 협업 도구를 지속해서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연구 목적에 맞는 나만의 지식 인프라 활용 환경을 자유롭게 구성해서 연구 단계별로 필요한 지식 인프라, R&D 수행에 필요한 학술정보·데이터·기술을 설정하는 등 나만의 연구 환경을 생성할 수 있다.
최근에는 팬데믹 시대에 맞춰 온라인 화상회의 서비스와 메타버스 기반의 협업 서비스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온라인 협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개인 파일·링크·메모를 손쉽게 관리할 수 있고, 연관성 높은 과학기술정보·데이터와 프로젝트를 가상공간에서 공유함으로써 공동 연구자와 함께 연구를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등 개방형 협업으로 가는 초석이 되고 있다. 기존 서비스 플랫폼들이 포털 형태의 검색 중심 서비스만을 제공한 데 반해 KISTI는 수동적 정보 제공이 아니라 적극적 협업 지원이라는 서비스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미래 개방형 협업은 어떤 모습이 돼야 할까' '디지털전환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인가' '국가 핵심 가치 확보를 위한 R&D는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원돼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답을 마련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들은 따로 고민해야 하는 개별적인 질문이 아니라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공통점을 찾아가야 하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답을 얻기 위해서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실제로 필요한 지원 환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 첫 번째, 가상공간에서의 비대면 협업을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 영상회의,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공간에서 현실과 같은 수준의 협업 범위를 넓히는 시도가 앞으로도 계속 이뤄져야 한다. 두 번째, 연구자들이 요구할 때만 정보 서비스가 동작하는 수동적 방식이 아니라 연구자들이 필요한 시점을 지능적으로 파악해서 적절한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마련하고, 이를 통합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의 통합서비스 플랫폼을 지향해야 한다. 세 번째, R&D 전 주기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각 단계에 맞는 맞춤형 데이터와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는 연구 지원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네 번째, R&D 활동 단계별로 각자 시나리오에 맞는 협업 환경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상기 요구 사항들을 통합할 수 있는 개방형 협업 중심의 통합서비스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는 엔데믹 시대에서 외부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국가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를 이뤄 낸 것처럼 연구자도 다시 혁신해야 하는 시점이다. 위기와 쇄신의 부름에 부응하기 위해 개방형 협업 환경을 지원하고 오픈 사이언스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소명에 답을 할 시점이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 jaesoo@kisti.re.kr
<필자소개> 김재수 KISTI 원장은 30여년 동안 KISTI에서 근무하고 있다. 데이터, 소프트웨어(SW) 분야에서 활약했다. 2008년부터 9년 동안 NTIS 사업단장으로 있었고, 국가과학기술데이터본부장직도 맡았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과학기술정책 전공 책임교수, 차세대 정보컴퓨팅기술개발 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빅데이터 민간 합동 태스크포스(TF) 위원,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장도 지냈다. 한국융합학회 상임고문, 한국기술혁신학회장, 한국콘텐츠학회 부회장, 한국정보관리학회 부회장 등 학회 임원도 거쳤다.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