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구성과 덕에 성범죄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그만한 보람이 없을 겁니다. 하루빨리 이것이 가능해지기를 바랍니다.”
일명 '물뽕'으로 불리는 GHB 노출 여부를 현장에서 손쉽게 확인 가능한 기술을 개발한 권오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감염병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권 책임연구원팀은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원팀과 함께 기술을 개발했다.
GHB는 색과 냄새, 맛이 없는 중추신경 억제제다. 노출 15분 내 몸이 이완되고 환각이나 흥분 작용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성범죄에 주로 쓰인다.
권 책임연구원은 과거 우리나라를 뒤흔든 '버닝썬 사태'로 물뽕이 주목받으면서 이를 이용한 성범죄를 막을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물뽕은 양산이 굉장히 쉽고 저렴해 이미 많이 유포됐고, 투여 6시간 후에는 대부분이 몸을 빠져나가 검출도 어렵다”며 “끼치는 해악이 심각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소속 연구자로서 해결 방안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 책임연구원은 특히 '편의성'과 '효과'에 집중했다. 현장에서 음료에 섞인 GHB를 손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없다면 기술 효용성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 결과물이 '헤미시아닌'이라는 염료를 이용한 발색 화합물이다. 이를 하이드로겔 형태로 만들었는데, 평소 쓰는 물건에 발라두고 여기에 GHB가 든 음료를 묻히면 색이 변한다. 실수인 척 음료를 흘리는 등 방법으로 은밀하게 음료 내 GHB 함유 여부를 알 수 있다. 그는 “눈에 띄는 방법으로 GHB를 검출해야 한다면, 그 시도가 오히려 피해자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며 “간편하고 쉬운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화합물을 가루 형태로 만들었는데, 편의성을 고려해 이를 하이드로겔로 바꾸기도 했다.
권 박사는 유달리 이번 연구에 열의를 불태웠다고 했다. 실제 해외 유입 물뽕을 압수하는 관세청을 찾아가 설명을 들으며 현실을 접하기도 했고, 연구진과 함께 클럽을 찾아가 기술이 실제 기능하는지 알아보기도 했다. 그는 “아무래도 실생활에 밀접한 연구다 보니 더 열의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관련 기술은 곧 제품화가 이뤄진다. 올해 초 비제이바이오텍에 기술을 이전했고, 올해 안에 대량 생산 합성 공정을 확립할 계획이다. 제품 출시는 내년 하반기가 목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도 이런 착안으로 만들어진 제품이 없다. 제품 출시 후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권 책임연구원은 “이후 GHB와 '3대 데이트 성폭력 약물'로 꼽히는 케타민, 벤조디아제핀을 검출하는 기술도 준비 중”이라며 “3개 약물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기술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성범죄 감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