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가상공간을 통해 마케팅을 펼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일부 기업은 오프라인 사무실 대신 온라인으로 출근해서 회의와 업무를 진행한다. 패션 브랜드도 가상공간에 제품을 아이템으로 넣거나 쇼룸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가상현실을 '메타버스'(Metaverse)라 이르고 있다.
IT 기업의 메타버스 행보는 적극적이다 못해 공격적이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5년 이내에 페이스북을 SNS 기업에서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사명을 변경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메타버스는 인터넷 뒤를 잇는 가상현실 공간이 될 것”이라며 실제 메타버스 솔루션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대기업은 물론 교육, 금융,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카카오는 지인 기반의 국내 서비스를 넘어 세계인이 사용할 수 있는 공통 관심사 기반의 3차원(3D) 가상공간 플랫폼 '컬러버스'를 준비한다고 밝혔다. 메타버스는 물리적 국경을 초월해서 세계인이 K-팝, 웹툰 등으로 여러 국가의 사람들을 한 곳에서 소통할 수 있게 한다. 이제는 정부와 민간기업도 메타버스가 제공할 세상을 위해 하나씩 발을 내디디고 있다.
글로벌 통계 전문업체 스태티스타는 메타버스 시장 규모를 2021년 307억달러(약 36조7786억원)에서 2025년에는 2969억달러(355조6862억원)로 10배 가까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2030년이 되면 시장 규모는 5000억달러(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메타버스가 주목받고 성장이 기대될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리적인 교류를 가상공간이 대체했고,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기술 발전이 가시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상 부동산이나 디지털 콘텐츠 소비력이 증대하면서 가상 세계에서 경제활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메타버스가 단순히 '개성 있는 아바타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그 자체로 완전한 다른 세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와 동일한 경제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활동 중심에 대체불가토큰(NFT; Non-fungible token)이 있다.
2020년부터 미술품 등의 판매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자산의 소유·사용 등에 대한 권리와 거래의 이력, 이런 정보가 저장된 주소를 포함한 고유한 인식 값을 가지고 있다. 유일무이한 인식 값을 갖는 자산은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세상에서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됐고, 이 가치에 기반해 투자와 거래라는 경제활동이 가능하게 됐다.
메타버스가 빅테크 기업 주도로 그 시장을 발전시키고 있다면 NFT는 소비재, 패션, 자동차, 유통 등 기업 성격과 관계없이 시장을 키우고 있다. 2021년 나이키는 글로벌 대기업 최초로 NFT 스타트업 RTFKT를 인수, NFT 시장 참전을 선언했다. 마니아 사이에서 이미 슈테크라는 이름으로 거래가 활발한 스니커즈 시장을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구찌, 돌체,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도 희소성이라는 특성을 그대로 가져와 NFT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기아·한국GM 등 자동차 기업과 롯데·현대·신세계 등 유통기업이 앞다퉈 NFT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NFT는 어떠한 가치를 소유 또는 거래하는 한계밖에 없을까? NFT를 통해 재미, 헬스케어, 경제활동까지 잡은 서비스가 있다. 바로 '스테픈'(STEPN)이다. 스테픈은 사용자가 걷거나 뛰면서 코인을 채굴하며 수익을 올리는 서비스다. 채굴을 위해서는 스테픈 플랫폼에서 거래에 사용되는 운동화를 구매해야 하는데 이 운동화가 NFT로 만들어졌다. 걸으면서 얻은 코인으로 운동화를 수리하고,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운동화를 만들 수 있다. 기능이 향상된 운동화는 재판매해 또 다른 수익을 올리면서 NFT로 건강·재미·경제 요소를 다 잡음으로써 현재 월간 사용자가 200만명에 육박하는 인기를 얻고 있다.
2019년 30억원 규모에서 올해는 100조원 규모로 전망되고 있는 NFT 시장 성장에는 기존의 디지털 콘텐츠 생산의 용이성, 거래의 간편함과 투명함, 희소성의 경제라는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메타버스라는 새롭고 거대한 거래와 소통 공간이 큰 몫을 하게 됐다. 앞에서 기술한 NFT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을 론칭한 기업들 역시 모두 메타버스라는 거대 시장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메타버스와 NFT가 처음부터 각자의 기술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며 발전해 온 것은 아니지만 현재 메타버스와 NFT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를 보완하며 동반 성장의 시너지를 내고 있다.
메타버스 발전에는 현실 세계 경제 생태계를 가상공간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반영할 수 있는 확실한 경제 도구인 NFT가 필요한 경제 아이템이 됐고, NFT는 NFT 마켓플레이스라는 단순한 거래 플랫폼을 넘어 구매·유통뿐만 아니라 전시와 소통 같은 마케팅 활동이 가능한 거대한 시장이 필요해진 것이다.
개인은 PC나 모바일에 저장돼 혼자만 누릴 수 있던 NFT 디지털 예술 작품을 메타버스에 전시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고, 적극적 판매를 위한 마케팅 활동도 가능해졌다. 조각투자를 통해 일부를 소유하던 작품을 모든 소유자가 모여서 완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 수도 있다. 또한 메타버스로 말미암아 물리적인 차이로 발생하던 접근성의 불평등이 사라지면서 현실 세계에서 소비자 역할만 맡던 개인도 메타버스 내에서는 디지털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부가가치를 창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최근에는 메타버스 내에서의 NFT 상품의 인기를 오프라인의 실물 판매와 연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우수한 K-팝, 드라마, 영화, 웹툰 등의 콘텐츠를 보유한 문화 콘텐츠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메타버스 세계에서 중요한 경제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지식재산권(IP)이다. 이 역시 NFT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메타버스와 NFT를 구성하기 위한 기술과 함께 K-콘텐츠의 경쟁력과 그 가치를 중심으로 또 다른 새로운 기회를 준비해야 한다.
물론 아직도 메타버스·NFT·블록체인 등과 관련된 제도적 규제, 기술적 제약, 사행성 이슈, 메타버스 내의 윤리 이슈, 거대한 변화에 대한 회의적 시각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처럼 '상상력은 종종 우리를 과거에는 결코 없던 세계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상상력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10년 후 우리의 삶을 쉽게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제는 떼어놓을 수 없는 NFT와 메타버스가 기존 오프라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의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디딤돌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jhjoh@sw.or.kr
〈필자〉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회장은 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서 21년 동안 대표이사로 있는 소프트웨어(SW) 기업가이다. 지난해 2월부터 법정단체인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18대 회장이 되면서 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컴투스홀딩스 사외이사, 재단법인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이사, 대통령직속 한국판뉴딜정국자문단 부단장을 역임하며 SW산업 발전과 디지털뉴딜 정책 수립을 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