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간 플랫폼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매우 커졌다. 흔한 예로 시장가치 기준 세계 10대 기업 가운데 플랫폼 기업은 2009년에 MS와 구글 등 2개사뿐이었지만 2019년에는 8개사가 플랫폼 형태의 사업 모델을 주력으로 삼게 됐다. 국내에서도 이제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 등을 비롯한 플랫폼 기업이 없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운 수준이다.
플랫폼 기업이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이들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특히 대형 플랫폼 의존도가 커진 소상공인, 자영업자나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거래상 지위 격차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불공정 관행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 이에 대응해 지난 정부에서는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등 플랫폼 대상의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뤄졌다.
여기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플랫폼 특성이나 국내시장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한 상태에서 추진됐다. 플랫폼은 빠르게 대형화해 시장을 장악하는 경향이 있지만 혁신을 지속하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 지위를 쉽게 잃는 특성도 있다. 따라서 해외 플랫폼 규제 논의는 GAFAM과 같이 지위를 더 위협받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글로벌 초대형 플랫폼에 국한되고 있다. 다수의 자국 플랫폼 기업이 존재하고 비교적 경쟁이 활성화된 국내시장에서도 적극적 규제의 필요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둘째 국내 플랫폼에 대해 제기된 이슈 가운데 상당수는 이른바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는 이미 다양한 규제 수단이 있다. 공정거래법은 외국의 경쟁법에서는 보기 어려운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에 대한 규율을 담고 있으며, 갑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특별법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수단이 문제점을 충분히 해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또 하나의 규제법을 추가하면 특별히 더 효과적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도 없다.
셋째 플랫폼 규제 입법 논의가 정부 부처의 관할권 다툼 양상으로 번지면서 초점을 잃고 불확실성이 증대됐다. 플랫폼화 현상은 경제 전반에 걸쳐서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정 부처가 이를 전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정부 내에서 여러 목소리가 중복적으로 나옴으로써 민간의 피로도와 대응 비용이 커지고 정책 일관성에 문제가 생길 우려도 커졌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 자율규제는 이런 문제점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자율규제는 자율과 규제라는 상반된 느낌의 두 단어가 결합해 있어 일견 모순적인 용어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규제 도입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규제를 회피 또는 연기하려는 시도가 아닌지, 반대 측에서는 자율을 가장한 정부의 그림자 규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율규제는 현시점에서 플랫폼 경제의 역동성을 제약하지 않으면서도 부작용은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향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플랫폼 자율기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규제의 집행이 아니라 플랫폼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연구 기능 제공이다. 학계는 물론 각계의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플랫폼 특성 및 국내시장 상황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상시화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당면한 문제를 정의하고 규제 등 입법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과 민간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논의하고 판단해 보자는 것이다.
민간과 정부의 협업 관계 설정도 분명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율규제는 정부 관련도 수준에 따라 자발형, 부분 위임형, 완전 위임형으로 나뉜다. 자발형은 정부의 개입 없이 순수 자율로만 운영되고, 완전 위임형에서는 정부로부터 법률적 위임을 받아 사실상 규제기관 역할을 한다. 반면에 부분 위임형에서 정부는 법률적 지위를 부여하고 논의에 참여하는 등 지원은 하지만 민간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한다. 이 가운데 플랫폼 시장에 가장 적절한 방식은 부분 위임형으로 판단된다.
자율기구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갑을 문제 해결이지만 소비자 보호 수단으로 자율적 분쟁조정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빈번하게 이뤄지는 플랫폼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부나 공공기관의 개입을 통해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플랫폼 스스로 분쟁조정 노력이 선행돼야 하며, 정부는 이를 모니터링하고 지원하면서 자율적 조정이 어려운 사례에 한해 개입하는 접근 방법을 취할 필요가 있다.
자율기구의 핵심 역할은 플랫폼 사업자의 몫이다. 자율규제의 의미가 있으려면 법으로 강제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슈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 스스로 행위규범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놓인 플랫폼의 합의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정부의 뒷받침과 더불어 사업자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율기구와 별도로 정부 부처의 정책 조정기능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부처별 역할에 따른 다양한 접근과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책이 만들어져 나올 때는 일관된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플랫폼에 대한 자율규제 접근은 해외에서도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시도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자국 플랫폼이 활성화된 나라도 드물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플랫폼 자율규제 기구가 국내 플랫폼 활성화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인 사례로 남기를 바란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원장) namhoon@konkuk.ac.kr
○권남훈 교수는…
공정거래와 ICT산업정책 및 규제정책 분야 전문가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산업정책팀장을 거쳐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학회장, 한국산업조직학회 부회장, 아시아태평양경쟁커뮤니티 부회장, 한국경제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국회 미래연구원 이사 및 사단법인 경제사회연구원 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 정책 자문역을 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발탁돼 윤석열 정부의 공정거래 분야 국정과제 수립에 참여하고, 특히 플랫폼 분야의 자율규제 정책기조를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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