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예술의 경계를 허물면 사람이 보인다

김현선
김현선

경계 허물기는 이제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영역이 그러하다는 의미다. 10여년 전부터 디자인 분야는 학제를 시작으로 전공 간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공학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서부터 인문학, 사회학, 경제학 등 이미 디자인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그동안 경계가 모호한 것에 대해 정체성을 논하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더 효율적이며 합리적이고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길로 여겨지며, '소통'이라고 일반화하고 있다.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사례에서 경계를 허문다는 것의 놀라운 면을 볼 수 있다. 허 교수가 수학을 단지 학문으로만 바라보았다면 아직 큰 상을 수상하기에 이른 나이일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수학은 인간 한계를 이해하는 과정이었기에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사람과의 소통을 중시했고, 그 경험이 자양분이 됐다고 본다.

지금 디자인은 데이터와 가장 밀접하게 소통하고 있으며, 그 소통이 서로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동안 디자이너의 감성과 분석에 의존하던 사용자 분석 분야에 데이터가 접목됐다. 빠르고 정확하게 문자·이미지·문서까지 통합적으로 분석해서 시각화함으로써 디자인이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등 해답을 던져 주기도 한다. 양산을 생각하면 때론 모험이 될 수 있는 디자인 분야에 빅데이터는 정확한 예측으로 실패율을 줄여 주기도 한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접목된 첨단 기술은 새로운 약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디지털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실버세대가 디지털약자로 내몰리며 점점 빨라지는 시대에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디지털 세상에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디자인 시장이 열렸다. 디자인에 데이터를 접목해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을 이제 더 이상 말로, 글로 설명하며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예측 가능한 데이터와 숫자가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모두 경계를 허문 소통 덕분이다.

경계를 허물어 새로 선보인 디자인공간도 있다. 게임에 한정되어 있던 가상공간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회의·만남·작업 공간까지 확장됐다. 메타버스 공간 속 디자인의 새로운 시장이 펼쳐졌다. 게임을 즐기는 일부 계층을 위한 화려하고 역동적이던 공간에서 이제 공공성이 필요한 또 하나의 공간이 된 것이다. 다양한 목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니 그 속에서 또 약자가 발생하고, 디자이너의 손길이 필요해졌다. 이 또한 경계를 허문 소통 덕이다.

무엇보다 지금 모두가 놀라고 있는 변화는 디자인 기법의 변화다. 핸드드로잉 기반 디자인에서 컴퓨터기술 기반 디자인으로 바뀐 지 30여년 만에 디자인 기법에 불어닥친 새로운 기법, 바로 '참여'다. 디자이너가 단지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기획하고 발견하고,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하는 인문학 기반 디자인 기법이 영국디자인카운슬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 불고 있다. 이 디자인 기법의 핵심이 바로 경계를 허문 소통이다. 교통사고를 해결하고, 범죄를 줄이고, 지역을 재생하고, 치매를 돌보고, 가난과 장애 극복에 도움을 주는 디자인이 가능해진 것이다.

예상하건대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알지 못한 새로운 분야와 디자인의 융합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수학 또는 고전일 수도 있다. 바람은 지금까지처럼 그저 놀라운 이슈가 아니라 새로운 학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디자인이 기반으로 작용할 것이라 확신한다. 디자인의 본래 목적이 사람을 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기법의 전환, 공간 확장의 중심에는 고전 같은 진리인 사람이 있다. 경계를 허무는 것은 어쩌면 뻔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기본이다.

김현선 한국디자인단체총연합회 회장 khsd6789@korea.com